[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경제계가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재벌 총수의 전횡방지와 견제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기업의 경영권이 무력화되고 투기세력에 기업을 강탈당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을 두고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뿐만 아니라 상장사단체인 상장사협의회도 반대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1주 1의결권 등 시장경제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소액주주 대신 투기펀드만 활용할 소지가 있다. 근로자 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은 회사 발전보다 근로자, 소액주주 이익만 주장해 의사결정 지연과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다중대표소송 도입은 주주 간 이해상충 소지가 있고 소송리스크 확대 등의 부작용이 크다.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최근의 가짜뉴스처럼 악의적 루머공격 시 투표 쏠림과 결과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은 정책을 신뢰한 기업만 손해 보는 문제를 재연하고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져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우리나라는 지배구조 규제 강화를 논의하면서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과 같은 효
과적인 법적ㆍ제도적 방어수단이 확보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상장회사들은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나 변칙적 순환출자 등을 이용해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이즌필은 미국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수단이고 일본도 도입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있는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은 논의조차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규제를 도입해 투기자본의 경영권 개입만 부추기고 있다"며 "대주주 견제는 상법 개정보다 개별 기업의 기존 내부통제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인적분할회사의 자사주 신주 배정을 금지하면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인 기업과 이미 전환한 기업은 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화돼 투기세력 공격의 빌미가 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기존 순환출자 해소는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를 불러온다. 현재는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되고 기존 순환출자는 자발적으로 해소하도록 했는데 개정안에 따라 기존 순환출자까지 3년 내 해소하려면 삼성, 현대차, 롯데 등 8개 대기업은 최소 수조원이 들어간다. 삼성의 경우 이미 삼성전자의 분할을 비롯해 지배구조 개선로드맵을 마련, 추진하고 있다. 일부 예외를 인정해주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도 자발적인 지배구조개혁을 오히려 더디게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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