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불안감에 휴학?…의대생이 가장 안정적"
"의사집단이 인정받기 위해선 스스로 질 관리해야"
지난달 18일, 권용진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일본 도제식 수련 과정을 개선해 독일식 '연차별 수련제도'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정부와 대학이 정한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 시한을 앞두고 서울대 의대 교수 4인이 '등록하지 말라'고 동료들을 종용하는 일부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자, 사직 전공의들이 이를 반박하며 의료계 내부에 긴장감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권 교수는 지난달 26일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함부로 말하는 소수의 전공의와 가르치는 일에 관심 없는 소수의 교수 때문에 교수와 전공의 간 갈등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더 이상 교수와 전공의 간의 관계가 유교적 사제관계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도제식 수련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의사이면서 법학박사 학위를 딴 의료정책·행정 분야 전문가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총괄간사를 맡아 대정부 투쟁을 이끈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턴 전공의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의 휴학에 대해 비판적 제언을 이어오고 있다.
다음은 권 교수와의 일문일답.
-의대생들이 제적을 피하기 위해 등록하고 있다.
▲일단 등록은 하고 수업은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모양이다. 사전에 학생들끼리 투표를 해서 결정했다는데, 이것이 나중에 집단행동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각자의 의견대로 행동했으면 좋았을 텐데…. 만일 학교로 돌아와서도 다같이 수업을 받지 않으면 집단행동이 되는 것이다.
-다른 과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 여론이 너무 안 좋아졌다.
▲사회가 더 이상 의대생들에게만 특혜를 주기 어렵다. 아직 의사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학생들인데 이미 자기들이 의사인 것처럼 행동하는 건 부적절하다. 미래의 직업이 불안정해졌다는 이유로 휴학한다면 불안한 대학생이 의대생뿐이겠는가? 가장 미래가 안정적인 게 의대생들인데, 집단행동으로 사회를 설득하기 어렵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의대생들이 어떻게 해야 했나.
▲학생들이 사회로부터 존중받는 이유는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의대생이라면 최소한 정부와 의료계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이해관계자가 돼버렸다. 정책에 반대해서 집단행동을 할 순 있지만 그 책임과 피해는 본인들의 몫이 됐다.
-의대 교육과정 특성상 개별 행동이 어렵다고 한다.
▲바보 같은 소리다. 그런 연대는 취약한 연대다. 지식인이라면 가장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집단인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왜 서로 눈치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나. 학생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 지식인들이 다 비슷하다. 정치가 이러면 안 된다, 사회가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 통합이나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지식인이 없고, 교수 집단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 전체의 병리현상이다.
-의대생들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정부의 의료 개혁도, 자신들의 투쟁 방식도 뭔가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고 느끼지만 잘 모르는 것 같다. 국민을 위해서도 이런 식의 개혁은 아닌 것 같은데, 문제의 본질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도 다 옳지는 않은 것 같지만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한편에선 '미래를 저당 잡히기 싫다' '예전만큼 의사 수익이 보장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파 학생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이 돈만 바라고 의대에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좋은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도 절반쯤은 있지 않겠는가.
-투쟁으로 거둔 것이 없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도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1년 넘게 휴학하며 투쟁했는데 얻은 게 없으니 지금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도 할 것이다. 나는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끝났다고 보지 않는다. 이제 겨우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이번에 의대 수업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24·25·26학번까지 '트리플링' 될 수 있다.
▲학생들이 선택한 것이다. 학생들이 유급당해서 생기는 문제는 학교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교육 여건이 나빠지는 것도 자신들이 선택한 것이고, 어떤 의대도 집단 유급된 학생들까지 가르칠 만한 교육 환경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들도 걱정이 많다.
▲의정 갈등 중에 의대생 학부모 모임이 성명을 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자식이 좀 더 편안하고 잘 살게 하고 싶어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 시키고 의대 입시까지 해냈는데, 그게 행복이었던 부모들 입장에선 자신의 트로피를 누군가가(정부가) 깎아내리고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아마 의대생의 기득권이라고 하면 실상 그 부모들이 지키고 싶은 기득권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려면 제도를 바꾸는 정도론 해결되지 않는다. 의대 교육, 의사 양성과정 전반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할 시점에 왔고, 그래서 이 문제가 간단히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전문가 집단이라는 법조인, 교수, 종교인, 언론인 모두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의사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 아픈 사람들, 환자들을 계속 진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전공의들이 '환자도 환자이지만 내 권리도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해줬는데, 사태가 1년을 넘어 2년째 되니 이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전문가 집단을 좀 더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전문가 집단은 자율성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자기 집단의 규율을 좀 더 높이는 식으로 서로 긴장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급속 성장 과정에서 그러지 못했다. 직업윤리를 관리해 본 역사가 없다 보니 이 신뢰가 너무 쉽게 무너졌고, 다시 쌓기 어려워졌다.
의사 집단도 내부적으로 질 관리에 실패하고 전공별·직역별 수익 불균형이 심화하면서 직업윤리가 무너졌다. 전문가 집단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선 계속 되돌아보며 스스로 질 관리를 해야 한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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