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박성호 정치경제부장]"올해가 외교ㆍ안보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다. 현재 한국은 정상(頂上)외교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가급적 빨리 종식돼야 한다"
오준 전 유엔(UN)주재 한국대표부 대사(현 본부대사)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본부대사실에서 가진 아시아경제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과 한국의 대선 등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가 아주 큰 불확실성에 직면했다"고 전제한 뒤 "이런 불확실성을 조기에 종식시킬 수 있도록 정치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 대사는 "불확실성이 오래 계속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며 "미 행정부가 바뀌고 도널드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 어떤 정책 등을 구체적으로 내 놓을지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국내 (탄핵) 정국 등은 우리 국민 스스로 흔들리지 않고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대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오 전 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 이후 촛불 시위를 언급하며 "우리 국민들의 민의가 정치를 포함한 국가 운영에 반영되는 시대"라며 "긍정적 변화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사회의 안정과 통합의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오 전 대사는 2013년 9월부터 지난해 말 퇴임 전까지 유엔 무대에서의 활약으로 국민들의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그는 북핵 문제에 대해 "핵실험을 5차례 수행한 현 시점에서는 실전 핵능력을 보유하겠다는 것이 목표가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인도나 파키스탄도 5∼6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능력을 완성했다"고 진단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지난해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한 안보리 결의안 2321호를 채택했다. 북한의 자금줄 차단이 핵심으로 대중국 석탄 수출량을 계량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북제재 결의의 실효성에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오 전 대사는 이런 지적에 대해 "유엔의 제재는 처벌이 아니고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제재를 받는 국가에 더 무서운 이야기"라며 "북핵 제재의 경우 목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포기이며 제재는 무기한이고, 시간이 갈수록 누적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자신했다. 총 수출의 25% 정도가 삭감되고 국제 금융과 운송이 대폭 제한되는 상황에서 무한히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제재의 실효성과 관련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 그는 "중국의 입장에 관해 흔히 오해하기 쉬운 것은 마치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려고 한다는 인식"이라며 "북핵 포기를 위해 지나친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붕괴할지 모르고 이것은 중국의 이익에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재 강화에 신중할 뿐"이라고 말했다.
오 전 대사는 제재의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영어 표현 중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last straw)를 인용하면서 "낙타의 등위에 지푸라기를 계속 하나씩 쌓으면 언젠가는 낙타의 등이 부러지는 순간이 온다"며 "북한이 현재의 제재 하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제재의 효과가 없다고 성급히 판단하면 안 된다"고 언급했다.
특히 제재와 더불어 북한과의 대화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오 전 대사는 지난해 너무 강한 대북제재에만 몰두한 현 정부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대화는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하고 대화를 하려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 뒤 "남북 간 북핵 문제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주의적 지원 등 다른 이슈를 놓고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이런 대화가 북핵 문제에 직접 해결이 되지 않아도 도움이 된다"며 "유엔은 제재도 하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은 아끼지 않고 전쟁 중에도 관련 활동은 이뤄지는 것을 비춰볼 때 우리 정부가 무조건 중단하고 있는 건 시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 전 대사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반 전 총장은 오는 12일 오후 10여년 간의 유엔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대선 관련 메시지가 주목하는 가운데 앞으로 오 전 대사의 행보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오 전 대사는 반 전 총장의 정치판에 뛰어든 동기에 대해 한 마디로 '시대적 소명'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어렸을 때부터 대권의지가 있는 분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제적인 멘토 역할을 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방법이 가장 개연성이 높았지만 주변 분들이 반 총장에게 나서줘야 한다는 설득과 본인 스스로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이 시점에 중요한 소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오 전 대사는 일각에서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임기중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그 책임을 반 전 총장에게 묻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반 전 총장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남북 관계 개선 및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한국인 출신이 부담이었을 것"이라며 "가령 북한이 과거 유엔 사무총장을 초청하기도 했지만 한국 출신이라는게 걸림돌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의 임기 내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몇 번 거의 성사될 뻔 했지만 번번이 다른 문제나 장애가 생겨 결국 실행이 안 됐다"며 "남북 관계 개선 위해 중요한 건 북한의 태도. 상황이 조성되지 않고서는 어떤 사무총장이든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 전 대사는 오는 12일 예정된 반 전 총장의 입국 메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길 지는 현재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지지율이 낮아진 상황에서 앞으로 본인의 분명한 정강정책을 밝힐 거라고 생각이 들고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말했다.
정리=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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