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덕 소녀전 12월 14일까지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단발머리 소녀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하지만 소녀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있다. 어딘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된다. 창밖에 있는 남성이나 꽃을 쳐다보고 화면 밖 관객을 엿보기도 한다. 불안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이다.
작가 이흥덕(63)은 타고난 관찰자다. 탐구를 생활화한다. 작품에도 그러한 성향이 잘 나타난다. 때때로 '인생(2007)' 안에 스스로를 타자(他者)화시켜 한참을 바라본다. 소녀 역시 그의 관찰 대상이자 분신으로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소녀를 주제로 틈틈이 그린 캐릭터 그림을 모아 서울 방배동에 있는 아트갤러리 2번가(2ND AVENUE)에서 '이흥덕 소녀전'을 열었다. 지난 21일 전시를 시작해 오는 12월 14일에 문을 닫는다. 소녀를 주제로 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흥덕은 "내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객관적 보기'를 시도한 것이다. 세상에 훈계를 두며 관여하기보다 거리를 둔 상태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그들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다. 세상에 참여하고픈, 나 역시 그림의 상황에 개입해 동참하고픈 욕망과 의지다. 고정된 캐릭터로 사춘기 소녀를 그렸다. '지하철 시리즈(1998~2016)'와 같은 군중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고 했다.
소녀(少女). 아직 완전히 성숙치 않은 어린 여자아이는 가수 이문세(57)의 3집 음반 '소녀(1985)' 속에서 노을 진 창가에 앉아 떠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떠나면 안돼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충만한 감성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초조하고 불안한 심리를 표출한다. 사춘기 소녀는 아직 때가 덜 묻은 순수한 대상인 동시에 육체적ㆍ심리적으로도 변화를 겪는 시기라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소녀는 스스로 사회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면서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자신을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 수도 있는 미묘한 성장기다. 기성세대와의 차이를 말하고 싶었다."
이흥덕은 오래 전부터 불안을 이야기했다. 작품 속 공통요소다. 전작인 '붓다 예수 서울에 입성하시다(1998)'와 '지하철 사람들(1998)'은 당시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의 시대현실을 적확하게 포착했다. 팝아트적 느낌을 전통회화의 재료로 소화시키며 풍자와 비판, 진중함을 잃지 않는다. 제작방식은 전통적이지만 그의 예술정신은 늘 대중의 기호에 맞춰져 있다. 쉬운 이해, 자극적인 색 대비 효과를 집합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녀도 그 불안에 포함된다. 특히 성(性)을 통해 육체를 섹슈얼하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쾌감에 탐닉하는 양면성을 담았다. 소녀와 책을 나란히 병치해 그 양면성을 드러낸다.
"소녀는 미완의 대상이다. '바깥 현실은 어떨까?'하는 불안한 시선으로 책을 보면서도 주변에 관심을 갖는다. 책과의 병치는 소녀가 배울 수 있는 세상이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가상적이고 간접적이다. 이상적인 책과 다른 혹독한 현실을 느끼는 대목이다. 또는 기성세대로 대표되는 성인남성들에게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성인 남성은 권력과 경제력을 응집한 캐릭터다. 사춘기 소녀의 성적인 호기심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욕망과 판타지를 뒤섞어 리얼리티를 배가시킨다. '소녀 시리즈'는 2000년대 초ㆍ중반 주로 작업했다. 그 동안 소녀상도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타고난 관찰자인 그도 그 변화에 주목한다.
"(소녀는)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숨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그전에는 숨어서 호기심으로 바라만 봤지만 요즘에는 적극적으로 사회문제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어떤 내용이나 상황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조금씩 세상에 관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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