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사람' 시리즈 연작…거대 작품으로 성찰 다뤄
순천만 국제자연환경미술제 통해 회귀 "대자연으로 돌아가야"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돌아가는 길(2016)’을 보고 있노라면 가장 먼저 칠레 이스트섬의 모아이(Moai) 석상(石像)이 떠오른다. 여느 거대한 동상이나 거인의 형상을 지닌 작품처럼 엄숙함과 숙연함을 준다. 대나무와 철근을 주로 사용했으며 눈, 코, 입 등 구체적인 묘사가 없는 게 특징이다.
공공예술을 추구하는 최평곤(58) 작가는 인간 성찰(省察)을 콘셉트로 한다. 작품은 그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다. 거인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관람객은 저절로 숙연해진다. 때론 그것이 위압감으로 다가온다. ‘어둡고 희망적이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차가운 돌, 청동이 아니라 나무가 주는 온화한 느낌이 있다. 안을 비워 밝은 조명도 채워 넣었다. 이는 불편함을 상쇄시킨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크기가 크다보니까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사실적 표현보다 형태의 단순함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도록 했다. 마을을 지키는 장승과 같은 구도자적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작품 자체가 무겁고 어둡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한 마디로 우직함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개인으로서의 한 인간(人間)이 아니라 포괄적인 개념의 인류(人類·전 세계 모든 사람)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풍경이라 하지 않고 대자연이라고 말한다. 뜻은 비슷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대자연 속 인류를 담은 그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장엄하다. 작품은 멀리서 봐야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을 의도적으로 크게 만들었다. 공공예술을 하다 보니 미술관 안에서의 작업과는 규모에서 차이를 보인다. 멀리서도 감상이 가능해야 하고, 아무나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대형 작품인 만큼 설치하는데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그는 “완전히 건축 작업이다. 설치를 하려면 후배들과 함께 팀을 짜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작업하다보면 변수가 많아 밤을 새기 일쑤다. 크레인이 닿질 않을 때는 스티로폼 배를 만들어 작품을 그 위치까지 끌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그의 '대나무 사람' 시리즈는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공주에서 열린 설치미술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는 농민들이 사용하던 대나무 죽창(竹槍)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후 왜목마을 포구 갯벌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통해 6m에서 12m에 이르는 대나무 사람 열아홉 점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관된 작품 흐름은 포천 산정호수에 설치된 '무제(2005)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통일부르기(2007)’로 이어진다. 일정한 운동성과 방향성으로 대지 또는 하늘로 나아가는 인간을 그렸다. 자연스럽게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한다. 주로 개활지에 작품을 펼쳐 그 효과를 배가시켰다.
하지만 최근 참가한 ‘2016 순천만 국제자연환경미술제(SEEAF·11월18일~12월18일)’에서는 그 방향을 바꿨다. 진출이 아닌 회귀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습지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순천만은 세계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연안습지로 그간 순천만습지 보호지역지정(2003), 람사르협약등록(2006), 국가문화재 명승41호 지정(2008), 제 1호 국가정원지정(2015)을 거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이자 생태계의 보물이다. 최 작가는 생명의 근원지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제는 성찰의 시대다. 자연과 공존해야 하지만 인류는 끊임없는 욕망으로 개발을 택한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잠시 쉬어 되돌아오는 길을 봐야 한다. 인류는 대자연의 일부다. 고통의 길에서 벗어나려면 본래 인류가 왔던 곳, 어머니의 자궁 속과 같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자연으로의 회귀는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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