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일정, 재단의 갑질에 훼손된 수원월드컵경기장
올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재단은 잔디를 관리하지 않고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업체를 올해는 전국공모로 바꿨다. 하지만 잔디는 여전히 논두렁이다. 그 배경에는 재단의 '갑질'이 있다.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직원 A씨. 그는 수원시 관계자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 최근 그의 임명권이 경기도에서 수원시로 넘어갔기 때문.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했다. 때마침 축구가 보였다. 2일에는 수원 삼성과 수원FC가 붙는 수원더비가 있었다. 여기에 6일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의 경기도 수원에서 했다.
A씨는 무리해서 일을 진행시키려 했다. 8월말부터 잔디 공사를 추진했다. 용역을 맡은 잔디 전문 업체 B씨는 당황스러웠다. 보통 잔디를 새로 깔면 3개월 동안 관리 보존한 뒤에 경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수원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잔디를 깔고 20일 만에 중요한 두 경기가 열렸다. 잔디전문가들은 걱정이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들도 일을 받고 해야 하는 용역업체로 재단 측의 주문에 맞춰야 했다.
결국 8월말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9월 중 마무리했다. 작업이 어려웠다. 재단은 8월 말에 수원월드컵경기장 잔디 위에서 일주일 간 박람회를 하면서 잔디를 많이 훼손한 상태로 용역업체에게 넘겼다. 해당 업체는 난감했지만 그동안의 노하우를 발휘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공사를 끝냈다.
시간에 쫓긴 공사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2일 수원 더비를 하고 1~2일 연휴 기간 비가 많이 오면서 잔디 상태가 안 좋아졌다. 3일에는 카타르와의 경기를 앞두고 축구대표팀이 훈련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62)과 기성용(27·스완지시티) 등 대표팀 선수들은 잔디 상태를 보고 불만을 드러냈다.
논란이 되자 카타르와의 경기가 끝난 뒤 재단은 업체에 잘못을 떠넘기며 계약을 해지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나름대로 잔디 쪽에서는 인정받는 곳이다. 2002년 월드컵 때부터 현재 서울월드컵경기장, 전주월드컵경기장, 대구스타디움 등도 관리한다"면서 "수원만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타 구장보다 외부행사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에 온 참가자들은 잔디 상태나 축구경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잔디는 항상 많이 훼손돼 있고, 업체에서 급하게 뒷수습을 해야 했다. 관계도 좋지 않았다. 재단은 업체에 격려보다는 문제를 만들어서 지적하고 잘못을 따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업체 직원들도 많이 지쳤다. 그 여파가 그대로 경기장 잔디에 드러났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잔디는 아직 많은 경기를 버텨야 한다. 프로축구 경기가 계속 있다. 수원 삼성이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22일 성남FC, 다음달 2일 인천 유나이티드, 5일 광주FC와 경기를 한다. 이 경기장은 내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도 하는 장소다. 재단에서 계속 떠넘기기 식으로만 방치한다면 국제대회에서도 잔디는 논두렁 수준을 반복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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