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A 일괄적 감축, 업계 모르고 하는 소리"
"새로운 내용 없어…이미 업계 자율적으로 구조조정 中"
"구조조정 책임 피하려는 꼼수" 지적
[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정부 구조조정 방안요? 그거 진작 다 나온 얘기 아닌가요."
30일 정부가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대한 업계의 반응이다. 이번에 생산 감축 혹은 고부가가치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밝힌 테레프탈산(TPA), 폴리스티렌(PS), 합성고무(BR), 폴리염화비닐(PVC)은 이미 수차례 언급돼 온 대표적인 공급과잉 품목이다. 생산업체는 이미 자율 구조조정과 고부가 제품 생산 등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공급과잉으로 판단된 업종은 과거부터 거론돼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며 "정부는 그럼에도 왜 구조조정이 쉽지 않고 품목 업그레이드 혹은 전환이 쉽지 않은지를 따져보고 해결책이 제시해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대책이 이미 다 아는 방향을 다시 한 번 언급한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처음부터 석유화학업계가 어려워서 컨설팅과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기 보다 조선, 철강 구조조정 이슈와 맞물리면서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튄 것"이라며 "구조조정 후폭풍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컨설팅 업체을 앞으로 내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불만도 이어졌다. 공급과잉 제품으로 분류됐어도 일부 업체는 생산량 대부분을 자체 소비하는 등 기업별 상황이 다르지만 뭉뚱그려 감산 대상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테레프탈산(TPA)이 대표적이다. 페트병의 원료로 주로 쓰이는 TPA 생산업체 중 롯데케미칼과 효성은 생산량의 90% 이상을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페트(PET)의 원료로, 효성은 폴리에스터의 원재료로 쓰인다. 생산하는 만큼 소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곳 대표들은 28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주최한 석유화학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 참석해 감산을 권유받았다. 효성과 롯데케미칼은 TPA 외에는 공급과잉업종으로 분류된 다른 제품들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TPA가 공급과잉 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이들 업체도 감산 부담에 시달리고 있지만, 대부분을 자체 소비하고 있어 사실 감축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TPA는 현재 한화종합화학이 200만t, 삼남석유화학이 180만t, 태광산업이 100만t, 롯데케미칼이 60만t, 효성이 42만t을 생산할 수 있다. 생산능력은 600만t에 이르지만 생산량은 능력 대비 10~30%씩 줄여 현재 450만t 수준까지 낮췄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100만t 추가 감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감축 방안은 업계 자율에 맡겼다. 업계 간 대안을 마련해 통합하거나 감산을 추진하라는 것이다. 각각 다른 업체 간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업체별 감산 규모나 시점을 정해주는 것도 무리지만 이렇게 어쩡쩡한 결과를 내놓는 것도 말이 안된다"며 "조선 구조조정에 휩쓸려 컨설팅에 뛰어들고, 결과를 내놓는데만 혈안이 됐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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