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정부가 '땜질 처방' 논란을 일으킨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도를 보다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지능형 계량 인프라(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AMI)’를 통한 시간대별 차등 요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전력사용 정보를 파악한 후 사용량이 많은 시간대에는 절약을 유도하고, 적은 시간대 요금은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그간 수차례 논의에 돌입하고도 매번 흐지부지됐던 누진제 개편이 이번에는 공염불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다만 정부는 누진제 자체의 장점을 강조하고 있어 폐지 등과 같은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손질을 위한 태스크포스(TF)에는 국회 기획재정위,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의원과 정부, 한국전력, 민간전문가가 참여하게 된다.
김용래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전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누진제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만들어진지 너무 오래됐고, 불합리한 측면도 있다” 면서 “현행 누진제에 대한 현실성 부분을 검토해 TF를 통해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산업부는 표본가구 설정, 즉 샘플링 작업을 통해 가구별 전력사용량 증가나 이용패턴 변화부터 파악할 방침이다. 특히 올 하반기부터 시범 운영하는 AMI 사업이 누진제 개편을 위한 발판이 될 전망이다. AMI를 활용하면 소비자가 모바일 기기나 인터넷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의 전력 사용 패턴과 요금을 확인할 수 있다. 김 국장은 “전기요금 개편에 이 방안을 포함할 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TF를 통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검토안으로 언급되는 시간대별 차등요금제는 전력 사용이 많은 낮 시간은 전기요금을 비싸게 받고 밤에는 싸게 전기를 공급하는 제도다. 현재 산업·일반용 전기의 경우 전력 사용이 많은 낮 시간과 여름·겨울철에는 높은 요금을 매기고 반대로 전력 사용이 적은 심야 시간과 봄·가을철에는 낮은 요금을 매기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동안 거론됐던 전기요금 체계와 누진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백지상태에서 전면 개선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당정이 이 같이 누진제 개편을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에는 한국전력 주도로 누진제 구간과 누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2008년에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에 누진배율을 줄이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주택용 전기요금 단순화방안이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부)가 개편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흐지부지됐다.
이미 개편안도 몇가지 나와있다. 대부분 누진제 골격은 유지하되 누진단계를 간소화하고 누진배율을 현행 11.7배에서 훨씬 축소하는 내용이 골자다.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별도의 지원책 마련 등도 제기됐다. 산업용이나 일반용 전기요금에 대한 개편 필요성 등도 언급되고 있다.
다만 정부는 구체적인 개편의 범위나 방법에 대해서는 “정부 입장에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기 어렵다. TF가 출범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김 국장은 “산업용은 제철소, 반도체 공장, 중소기업 등으로 다양해 주택용처럼 누진제를 도입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전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서 누진제가 필요하며 누진제 완화는 오히려 부자감세가 될 수 있다는 기존 논리에도 변화가 없어, 제도 폐지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국장은 "시대가 변한 만큼 불합리한 부분이나 개선할 점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면서 "에너지 절약과 계층 간 형평성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가서 개편해야 하는 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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