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주택용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4년이다. 도입 초기 누진단계는 3단계였고 최저요금은 ㎾h 당 22.12원, 최고요금은 35.05원으로 누진배율은 1.58배였다. 이듬해 누진단계가 4단계로 늘었고 누진배율은 2.25배로 확대됐다.
2차 석유파동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1979년에는 12단계로 누진배율도 19.68배까지 확대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가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누진제는 축소로 전환, 1987년 3단계 4.21배까지로 줄었다. 그러나 다시 누진제 증가추세로 바뀌면서 2005년 현행 6단계 11.69배의 체계를 갖추게 됐다.
이처럼 세계 에너지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조정됐지만 최근 10년간 동일한 누진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누진제 '무임승차'=누진제로 인해 원가 보다 낮은 요금을 내는가 하면 원가에 5배나 되는 요금이 적용되는 등 편차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작년말 발표한 '주택용 전력수요의 계절별 가격탄력성 추정을 통한 누진요금제 효과 검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용 전력의 총괄원가는 ㎾h 당 145원으로 추정되는데 사용량이 100㎾h 이하인 구간은 원가의 50%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200㎾h 이상 구간에서는 총괄원가를 크게 초과하는 요금이 적용되고 500㎾h를 초과하는 구간의 요금은 총괄원가의 5배에 달하는 요금이 적용된다.
보고서는 월평균 전력소비가 300㎾h인 가구는 총괄원가의 90% 정도의 단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2014년 기준으로 월평균 전력소비가 100㎾h 이하인 가구는 410만4000가구에 육박하며, 총괄원가 이하의 요금을 지불하는 300㎾h 이하 가구는 전체 가구의 71.4%에 달한다.
즉 저소득층이 아닌 많은 가구가 원가 이하로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으로, 상당수가 누진제로 인한 무임승차 혜택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늘어나는 전력소비=기온상승과 냉난방 전력 사용 증가로 가구당 월평균 전력소비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오래된 누진제를 손봐야하는 이유다.
1998년 월평균 300㎾h 초과 사용가구 비중은 5.8%에 불과했지만, 2002년 12.2%로 증가했다. 현행 누진제가 도입된 직후인 2006년에는 22.6%로 증가했으며, 2014년에는 28.7%까지 늘었고 지난해에는 29.5%를 기록했다.
늘어나는 전력 소비에 맞춰서 누진제를 완화하는 것이 합당했지만 시기를 놓친 셈이다.
특히 2011년 대규모 정전인 블랙아웃이 발생하는 등 수요예측과 관리에 실패하면서 누진제를 완화해야 하는 목소리는 힘을 잃었으며, '절전'을 목표로 한 누진제로 인해 과도한 사용량 증가를 막았다는 해석도 나오면서 누진제 개정 논의는 중단됐었다.
◆단계 축소하고 배율 줄여야=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누진제의 단계를 축소하고 배율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누진제를 도입하고 있는 다른 나라 대부분 3단계 내외이고 누진배율도 2배 이내다.
다만 누진배율을 축소하는 경우 현재 원가보다 낮은 단계의 요금이 상승불가피하고 이는 일부 저소득가구의 부담으로 작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누진단계는 3단계 이하로 축소하고 누진배율도 크게 줄여야 한다"며 "저소득가구에 대한 비용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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