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정부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하면서 향후 누진제 개편 논의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누진제 폐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에너지 절약과 발전용량 등을 감안해 누진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누진제 구조를 전면 재검토해 현실에 맞는 누진율을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새누리당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장기적으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 '전기요금 폭탄' 논란을 계기로, 향후 우리나라 전력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거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지난 11일 "기존 누진제의 장점을 살리면서 각계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며 "지난 12년간 여러 차례 개선하려고 했지만, 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3년에도 국회에서 개편안 논의가 있었지만, 야당 의원들이 '누진제 개편은 부자감세'라며 유지하자고 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여야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만들기보다는 민생안정을 명분으로 포퓰리즘적 주장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바꿀 때가 됐다'는 데에만 합의를 봤을 뿐, 정부와 여당 모두 아직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 차관은 "정부가 섣불리 특정안을 내지 않을 것"이라며 "누진제는 개선이 쉽지 않은 제도"라고 언급했다.
전기요금은 어떤 이에게 부담을 줄여주면, 다른 이에게는 부담을 늘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전력에 적자를 감수하면서 요금을 낮추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때문에 정부는 그동안 누진제 개편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해왔고, 지난 11일 오전까지도 "누진제 개편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석유파동을 계기로 1974년 12월 도입된 전기요금 누진제는 처음에는 3단계에 1.6배의 누진배율이 적용된 이래 몇 차례의 변경을 거쳐 2004년 6단계로 바뀌었다. 이후 미세한 배율 조정을 통해 지금은 11.7배의 누진배율을 적용하고 있다. 단계는 1단계(사용량 100㎾ 이하), 2단계(101~200㎾), 3단계(201~300㎾), 4단계(301~400㎾), 5단계(401~500㎾), 6단계(501㎾ 이상)로 구분된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요금체계를 바꾸면 저소득층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야당이 '부자감세' 논리를 내세웠고 정부도 이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예컨대 누진배율을 절반 수준이 6배로 낮추게 되면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가정에는 이득이 된다. 그렇지만 사용량이 적은 구간의 전기요금을 올려야 되기 때문에 1~2단계 구간의 소비자는 큰 폭으로 요금이 오를 수 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1단계와 6단계 구간의 요금이 모두 같아지고 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희비는 크게 엇갈리게 된다.
전력대란 우려도 제기된다. 누진배율이 낮아지면 전력소비를 부추기게 되고, 공급능력을 웃도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가 각각 안전성과 미세먼지 유발 등의 이유로 신규 건설이 어려운 상황에서 늘어나는 전력소비는 정부에게 적잖은 부담이다. 더욱이 원전과 화전 건설에는 반대하면서도 전력공급은 늘리자는 이율배반적인 논리로는 해결방안을 도출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누진제를 유지하되, 누진단계를 줄이고 누진율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당정TF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세밀한 의견수렴이 필요한 만큼 지금 누진율 등을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고 전했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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