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부는 국가 연구개발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해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하였다. 지난해 과학기술전략본부 신설 이후에 추가로 이어진 조치이다. 그 배경은 다름 아닌 국가 과학기술전략에 기초한 정책 조정을 강화해 국가 R&D 투자의 효율적 배분을 제고하고 궁극적으로는 연구개발 투자의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투자확대에 따른 연구과제의 중복성 등 비효율적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중심으로 R&D 분야 거버넌스 체계가 논의되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조직들이 여러 차례 설치되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폐지되었다가 필요성이 인식되면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거버넌스 체계가 일관된 형태로 발전되지 못하고 국가 차원의 전략 수립과 종합조정을 위한 역량도 키우지 못했다. 또한 필요성이 커질 때마다 급하게 조직을 신설함으로써 장기적인 미래 발전을 겨냥한 거버넌스 설계에 대한 아쉬움도 늘 있어 왔다. 최근 혁명적인 기술변화에의 유연한 대응과 혁신적 성과창출을 위해서도 지금의 R&D 거버넌스 체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한국적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것인가를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혁신적 성과는 오랜 시간에 걸친 지식축적과 높은 수준의 지식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다. 미래를 향한 R&D의 전략적 방향 설정과 자원배분 조정을 위해서는 지식의 변화 흐름과 미래의 변화에 대한 통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R&D 거버넌스 체계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조직 설치의 중요성을 넘어 전문성에 기반한 지배구조가 형성되어 작동되는지의 여부가 핵심인 것이다. 그동안 전문성을 고려한 여러 형태의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시도가 있어 왔다. 연구자 집단에 자율적 권한을 위임하는 독일식의 연구회체제를 도입하기도 하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체제에서는 일부나마 미국처럼 전문가를 관료로 채용하는 방식이 적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일본처럼 회의체를 두고 사무국에서 지원하는 방식을 적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적합한 거버넌스 체계는 어떤 것일까 ?
선진국들의 R&D 거버넌스 체계를 보면 전문성이란 핵심요소가 정부의 정책결정체계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형태만 바뀌었을 뿐 전문성에 기반한 R&D 거버넌스 체계가 작동되지 못했다. 그 원인으로는 우선, 의사결정시스템이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지 못하였다. 회의체 방식에서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관행적으로 관련 분야 관료들에 의해 주도되어 전문가들은 부분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회체제에서도 주요 의사결정을 관료들이 주도함에 따라 선진국처럼 전문가집단에 권한을 위임하는 자율과 책임체제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둘째, 전략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전문가 층이 얇은 점이다. 특히, 상위 의사결정단계일수록 특정 기술 분야의 전문성을 넘어서 혁신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을 겸비한 전문성이 중요한데 폭넓은 시야와 전문성을 보유한 전문가들이 양성되지 못했다. 셋째,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조직의 전문성 부족도 중요한 원인이다. 사무국 또는 정책을 지원하는 전문연구기관에는 지원자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거버넌스 체계의 합리성을 리드하는 설계자로서의 높은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충분한 수준의 정책 인프라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R&D 거버넌스 체계의 성공적인 구축을 위해서는 우리의 여건과 역량 수준에 적합한 우리만의 전문성 확보 방안을 찾아야 한다. 너무나 견고해서 변화가 힘든 우리사회의 일반적 지배구조를 제약조건으로 하면서 전문성을 실질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의 거버넌스 설계가 적절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회의체 방식보다는 전문가들이 전문 관료로 정부조직에 진출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정조직체계로의 전환을 고려해 봄직하다.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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