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증원'에 '지역의사제'로 절충
"싸워봤자 남는 건 유급뿐"…회의론도 확산
정부가 5년간 의대 정원을 연평균 668명씩 늘리기로 확정한 이후 의료계는 "합리적 이성이 결여된 결정"이라고 반발하면서도 대규모 집단행동엔 신중한 모습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 역시 이전 정부의 '2000명 증원' 방침에 맞서 전국적인 집단사직과 동맹휴학을 벌였던 것과 비교하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들이 대규모 집단행동에 신중한 가장 큰 이유는 증원 규모의 현실화다. 2024~2025년 의정 갈등 당시 의료계가 결사반대했던 핵심 명분은 "연간 2000명 증원은 의학 교육의 질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결정된 증원은 당시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첫해에 490명을 뽑는 것을 시작으로 점진적으로 정원을 늘리는 방식은 교육 현장의 과부하 우려를 상대적으로 희석시켰다는 평가다.
증원 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 논의를 기반으로 여러 차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를 거쳐 증원 숫자를 도출했다는 점도 의료계가 '정부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비판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증원된 인원을 서울·수도권 의대나 일반 의대 모집정원에 포함하지 않고 전원 '지역의사전형'으로 선발하기로 한 것도 증원된 의사들이 서울로 쏠려 무한경쟁을 유발할 것이라는 기존의 우려를 원천 차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도권 의대 교수는 "지역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해야 하는 조건이 붙으면서 개원가나 대형 병원 의사들이 느끼는 직접적인 위협이 줄어든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입은 경제적·학업적 타격도 영향을 미쳤다. 2년 가까운 대규모 휴학 및 사직 사태를 겪으며 투쟁 동력 자체가 소진됐고, 학생들 간 결속력도 크게 약화했기 때문이다.
수도권 소재 의대생 A씨는 "입학하자마자 1년 넘게 학업을 중단하고 정부에 맞섰지만 돌아온 건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아쉬움과 다음 해 입학생 후배들과의 경쟁뿐"이라며 "몰래 반수를 하거나 서둘러 입대한 친구들이 차라리 똑똑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B씨는 "꼬박 일 년 반 동안 이어진 갈등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쳤다"며 "무작정 반대만 하기엔 국민 시선도 차갑고, 우리 사이에서도 이제는 적정선에서 합의하고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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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내에서는 집행부에 대한 퇴진 요구가 이어지고, 전공의들도 더 이상 의협의 투쟁 지침을 따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이번 증원 결정에 의사·전공의들이 소극적인 이유는 정부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간 투쟁의 피로감과 선배 세대에 대한 불신이 극단에 달했음을 보여준다"며 "정부가 제시한 '단계적 증원'이라는 절충안이 이러한 의료계 내부의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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