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관심한 日에서 전례없는 '총리 팬덤'
펜·가방·음식…모든 것이 관심사
"정책 논의 묻힐 것" 언론 우려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해보셨나요? 제게도 학창 시절을 책임졌던 여러 '오빠들'이 있었는데요. 실물을 보겠다고 교복 차림으로 방송국까지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주 일요일 중의원 선거를 치른 일본은 아직도 선거 열기로 뜨겁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말 그대로 압승했기 때문인데요. 여기에는 다카이치 총리를 연예인처럼 좋아하는 다카이치 팬덤 활동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새로운 팬덤 활동으로 떠오른 '사나카츠(사나에 팬덤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사나카츠는 다카이치 총리의 이름 '사나에'에 팬덤 활동을 뜻하는 '오시카츠(推し活)'를 붙여 만든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덕질'이라는 단어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오시(推し)는 '밀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가장 밀어주는 멤버, 즉 '최애'를 뜻합니다. 여기에 활동을 뜻하는 '카츠'를 붙이면 최애를 위한 모든 활동이 되는 것이죠. 한마디로 '일본 총리 덕질'이 되겠습니다.
일본은 선거 기간에 총리가 직접 집권당 지원 유세를 나갈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현장에 갈 때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는데요. 특이한 점은 이들이 정말 연예인 콘서트에 오듯 플래카드 등을 만들어 응원한다는 것입니다. '다카이치 힘내라'부터 '사나에' 이름을 스티커로 만들어 붙인 부채를 유세 현장에 가져와 응원했는데요.
사실 사나카츠는 총리 취임 이후부터 관측되던 현상입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이후 항상 들고 다니던 가죽 가방은 사람들이 따라 사면서 품귀 현상을 빚었죠. 나가노현에 본사를 둔 가죽가방업체 하마노 공업의 '딜라이트 토트백'이라는 모델인데요. 천연 가죽 소재에 수납공간이 많고 가벼워 총리의 애착 가방이라고 불립니다. 지금 주문하면 무려 반년 뒤에나 받아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다카이치 총리가 쓰던 볼펜도 인기입니다.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똑딱이 펜'이 유행하게 된 것인데요. 공식 석상에 메모하려고 들고나온 제트 스트림 펜이 마찬가지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특히 총리 것과 같은 분홍색 케이스가 인기가 많아 문구점에서 추가발주를 넣었다는 이야기들이 보도됐죠. 제트 스트림 홍보팀도 갑작스러운 관심 증가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하죠. 이처럼 다카이치의 아이템까지 따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사나카츠'에 이어서 '사나에 마니아'라는 이름까지 생겨났습니다.
총리가 좋아하는 음식도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현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는 총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재해석한 '사나카츠 정식'을 선보였는데요. 심지어 가격도 3700엔(3만5000원)으로 딱 맞췄습니다. 숫자 3과 7이 일본어로 '산'과 '나나'로 발음되는데, 이를 살려 가격도 사나에의 '사나'로 맞춘 것이죠. 다카이치 총리는 고기만두, 명란 밥, 크로켓을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요. 이를 호텔식으로 판매하는 것입니다. 전체 식사 예약 손님의 70%가 사나카츠 정식을 먹기 위해 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요.
특히 고기만두는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공식 석상에서도 만두 이야기를 나눠서 '만두 대화'가 언론에 보도됐는데요. 가타야마 사츠키 재무상이 새벽부터 시작된 정책 스터디에서 "만두를 좀 받았는데 가져가실래요?"라고 다카이치 총리에게 묻자 총리가 "나도 안 그래도 고기만두가 너무 많아서 냉동실이 꽉 찼어"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노출되면서 친근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했죠. 이 대화가 알려지면서 간사이(관서) 지방 만두 프랜차이즈 '551 호라이'의 주문이 크게 늘었었다고 합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간사이 출신인데다, 고기만두를 좋아한다고 하니 이곳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추측 때문이었죠.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유명한 일본에서 이런 팬심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역대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 시기에도 보기 어려웠죠. 일본 언론은 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요. 지역구 세습이 일상적인 일본이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정치 금수저'는 아닙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선거구도 물려받지 않았죠. 여기에 간사이 지방 사투리까지 사용합니다. 남자 정치인이 주류인 일본에서 최초 여자 총리 타이틀도 거머쥐었죠. 기존 엘리트 정치인과 다른 신선한 면들이 유권자에게 어필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팬심으로 뒤덮여버린 상황에서 건강한 정책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선거 다음 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팬덤 정치 선거가 전후 민주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이런 현상을 비판했습니다. 마이니치신문도 전문가를 인용해 "언론이 엔화 약세를 둘러싼 발언, 중의원 해산 명분 등 다카이치 총리의 말을 아무리 비판해도 팬덤 때문에 타격이 없었다. 말이 안 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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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카츠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일본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응원이 정책 검증 기회를 삼켜버린다면, 유권자들은 권력을 견제할 권리와 책임을 스스로 내려놓게 됩니다. 일본 언론이 우려하는 것도 이 지점입니다. 총리 팬클럽이 일본의 민주주의를 살릴지, 잠식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결국 답은 팬이 아니라 유권자에게 있겠지요.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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