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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배신]돈이 가라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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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넘치는 자금, 비생산 분야로 흘러 들어…기업 투자는 줄고 부동산, 채권에 '뭉칫돈'

[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시중에 돈은 넘치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내리고,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돈을 푸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실물경제에 돈이 흘러들게 해 투자와 소비를 자극하겠다는 의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은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가계는 소비할 여력이 없어 지갑을 닫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본원통화는 136조3039억원(평잔ㆍ계절조정계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본원통화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통해 시중에 공급한 현금이다. 한국은행이 공급한 현금이 사상 최대치로 늘어나 있다는 의미이다.

 돈을 많이 풀지만 통화유통 속도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올 1분기 통화유통 속도는 0.71로 전분기 0.70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통화유통 속도는 한 나라의 경제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통화가 평균 몇 번이나 사용됐는지를 보여준다. 시중 통화량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며 급팽창 추세를 지속하고 있는데도 통화유통 속도가 최저수준을 맴도는 것은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올해 공시 내용을 보면 투자와 관련된 내용이 한 건도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27조원 투자 계획을 밝힌 이후 8개월간 공식적으로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힌 게 하나도 없다. 현대차는 지난해 1월 라인 합리화와 연구개발에 1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게 투자 관련 마지막 공시이다. 두 회사 모두 투자 계획만 밝혔을 뿐 실제로 어디에 투자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대기업들이 돈이 없어 투자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5대 그룹사의 사내 유보금은 지난해 말 530조원을 넘어섰다. 10대 그룹은 650억원, 30대 그룹까지 범위를 넓히면 75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들어서 일부 사정이 나쁜 기업들을 빼고선 여전히 사내유보금이 늘고 있는 추세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몰두하며 신규 투자 보다는 비용 절감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 예상되는데 누가 투자에 나서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투자 부진은 특정 대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수요 부족으로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서 생산 위축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4월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한 달 전보다 2.7%포인트 하락한 71.0%를 나타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2009년 3월 69.9%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갈 곳을 잃은 돈은 부동산, 금, 국채 등으로 몰리고 있다. 금과 부동산, 국채 등 이른바 '금부채'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건 경제의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채권형펀드 규모는 지난달 말 사상 최초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채권형펀드에는 15일 현재 100조7715억원으로 불어났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은 글로벌 유동성이 확장에서 정체로 축소되는 시점에 나타난 변화"라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앞으로 추세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분양된 부산 마린시티자이 아파트의 최고 청약 경쟁률은 837대 1을 기록했다. 기록적인 경쟁률을 만든 것은 투기 수요가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15년 6월~2016년 5월) 아파트 분양ㆍ입주권 거래는 8307건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6%가량 증가했다. 이달 들어서는 절반가량 지난 이날 현재 655건이 거래돼 2008년 관련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많은 건수를 기록한 지난달(1074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돈이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으로 몰리면 생산 증대에는 기여를 하지 않고 사고파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매매 가격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면서 "부동산에 거품이 끼면 중산층 이하 계층의 주거비 부담 증가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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