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 권리' 누리는 낙원의 꿈…김조광수 감독 결혼식에 오물 투척한 나라서 바라본 영화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울며 두드리는 이 문을 열어주오. 인생은 에우리포스만큼이나 잘도 변하는 것 그대는 보고 있었지 외로운 여객선을 몰고 미래의 열기를 향해 내려가는 구름장을 그리고 이 모든 아쉬움 이 모든 회한을”
하루 열네 번 물길이 바뀐다는 그리스 반도의 해협, ‘에우리포스’를 끌어와 펼쳐놓을 만큼 시인 아폴리네르가 느낀 인생은 가변의 연속이었다. 일생을 떠돌이로, 열리지 않는 세상의 문을 두드렸던 그에게 응답은 없거나 희미했다.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향한 차별과 편견의 문은 마치 벽처럼 여전히 우리 삶 도처에 굳건히 존재하고, 사회 곳곳에서 혐오가 범람하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도 최근 이에 맞서 울며 두드리는 외침이 있었다.
지난 25일 서울서부지법(이태종 법원장)은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와 연인인 영화사 대표 김승환 씨가 제출한 혼인신고서 불수리 처분 불복 신청을 각하했다. 법원은 “시대 사회 국제적으로 혼인제도를 둘러싼 여러 사정에 변화가 있더라도 현행 국내 법체계에서 동성 간 결합이 법률상 혼인으로 허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는데, 이 결정은 변화의 흐름은 인정하나, 제도에 대한 사법부의 해석보다 입법부의 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법원의 보수적 입장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 세계 237개국 중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는 네덜란드를 필두로 21개국이나, 이 중 아시아권 국가는 한 곳도 없다. 동성을 소재로 한 콘텐츠의 제작이 꾸준히 늘고 있고, 이에 따라 사회적 인식변화도 점차 확산되고 있으나, 현실의 벽은 아직 높기만 한 걸까. 김조광수 감독은 영화 제작자로 활동 중 메가폰을 잡았고, 그가 연출한 6편의 영화는 모두 동성 간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동성애를 어떻게 영화에 담아내고 있을까? 투쟁적인 메시지를 담은 인물의 일대기와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영화까지. 동성애(게이를 중심으로)를 다룬 영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밀크’
뉴욕의 평범한 증권맨 하비 밀크는 40세 생일을 맞던 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연인과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당당히 함께하는 삶을 꿈꾼다. 동부에 비해 자유롭지만, 여전히 게이에게 배타적인 지역 분위기를 게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활동하며 개선해나간 그는 현실정치를 통해 게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두 번, 주의원에 한 번 출마, 거푸 낙선한다. 여기에 낙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출마해 당선된 하비는 가장 먼저 게이 인권 규정 법안 통과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게이를 ‘변태, 소아성애자와 같은 비정상적 가치관의 소유자’로 매도하는 동료 의원에 맞서 게이 인권법을 통과시킨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동료 의원에게 자신이 왜 치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털어놓는 하비의 내밀한 고백은 지금 우리 사회 안의 게이들이 느끼는 절망, 그리고 희망과 조금은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난 지금까지 애인이 넷이었는데, 그중 셋이 자살을 기도했어. 나 때문에, 내가 못나서. 그들과의 관계를 숨겼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게이 인권법) 이건 이슈가 아니야. 살기 위한 거야.”
영화 ‘패왕별희’
군벌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1925년의 중국, 어린 소년 데이와 샬루는 베이징 경극학교에서 예인이 되기 위해 성인도 감당키 어려울 고된 수련을 감내하며 경극배우를 꿈꾼다. 항우와 우희의 비극적 이별을 그려낸 경극 ‘패왕별희’ 주연에 발탁된 두 소년은 뚜렷한 외모와 성향에 맞게 미소년 데이는 우희를, 남자다운 샬루는 항우를 맡으며 운명과도 같은 연기를 펼치고, 여자 역할에 좀처럼 몰입하지 못한 데이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자기 안의 남성을 죽이고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이 그의 연기는 절륜한 수준으로 성장해 둘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명 경극배우로 주목받게 된다.
사랑과 우정을 넘나드는 둘의 감정이 켜켜이 쌓이는 사이 샬루는 홍등가의 유명 창녀 주샨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질투에 사로잡힌 데이가 이들을 경계하면서 틀어진 관계는 일본 패망과 국공내전, 마오쩌둥 집권 후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삶을 비극으로 이끄는 방향추가 된다. 후천적 환경에 의해, 격랑과도 같은 역사 속에 형성된 듯 모호하게 그려지는 데이의 성정체성은 고민과 통찰이 아닌 강압과 생존을 위해 결정되고, 항우와 우희의 고사에서 경극 패왕별희로, 그리고 이를 극적으로 풀어낸 영화 패왕별희에서 이후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장국영의 개인사까지 오버랩 되며 ‘패왕별희’는 오늘까지 여러 의미에서 수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극 중 데이가 유년시절 연습 때마다 틀려 스승에게 호되게 혼나던 노래 구절은 그의 삶과 함께 많은 의미를 머금고 있다.
“나는 비구니, 사부에게 머리를 깎여...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계집아이도 아닌데...”
영화 ‘호수의 이방인’
외딴 숲 속 호숫가에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성적 욕망을 즐기는 게이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금빛 모래사장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다 이내 호수에 몸을 던져 수영을 즐기고는, 그러다 눈빛이 스친 상대와 숲 속으로 가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지난 2013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상을 받은 ‘호수의 이방인’은 태양과 호수, 그리고 숲과 게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다 어느 순간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계기로 조용하게, 힘들이지 않고 관객들을 스릴러의 현장으로 인도한다. 주인공 프랑크는 눈여겨 보던 미셸이 파트너와 수영을 하다 그를 힘으로 제압해 익사시키는 순간을 목격하고도 오히려 미셸을 만날 수 있는 현실에 집중한다.
죽은 미셸의 파트너가 변사체로 발견된 후에도 호수의 게이들은 여전히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다 숲 속에선 육체를 탐닉하는데 몰두하고, 프랑크와 미셸도 자연스럽게 서로를 욕망한다. 프랑크는 자신만 침묵하면 미셸의 살인혐의는 미궁에 빠지고 자신의 쾌락 또한 영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호숫가에서 사귄 대화 친구 앙리가 미셸의 범행을 알고 있고 이를 눈치챈 미셸이 앙리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프랑크는 숲 속을 헤매며 자신을 부르는 미셸의 목소리에 기묘한 감정을 느낀다. ‘호수의 이방인’은 한정된 공간의 소수자들 사이에서 사랑이 공포로, 탐닉이 두려움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여기에 동성애는 주제적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감독이 선택한 도구로 해석되나,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나체의 남성들을 가감 없이 담은 화면으로 인해 국내에선 심의문제로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영화에서 미셸 역을 맡은 배우 크리스토프 파우는 이성애자로, 국내 영화제 인터뷰 당시 영화 촬영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노출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기보다, 정사 장면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로 인해 (출연을) 주저하기도 했지만 먼저 감독을 신뢰했고, 현장에선 모험을 하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차이와 다름에 대한 몰이해적 시각
조금이라도 낯설고, 종전까지의 지배논리에서 벗어나면 배타적으로 몰아세우는 관습적 사회에서 새로운 시도는 늘 배척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한국사회는 동성결혼에 대한 법리적 이해에 앞서 예술적 표현도 용인하지 않는 보수적 세계이다. 지난 2013년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청계천 공개 결혼식엔 인분을 들고 나타난 50대 남성이 오물을 투척해 식장이 아수라장이 된 바 있는데, 이 남성은 경찰 조사를 통해 한 기독교 단체의 회원으로 밝혀졌다.
동성애는 허락이나 이해를 구해야 하는 행위가 아닌, 성정체성 발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하나의 성적 지향이다. 미합중국 연방 대법원은 2015년 6월 26일 수정헌법 14조 평등원칙에 따라 동성결혼이 헌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미국 전체, 50개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어제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대한민국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누구의 희생과 순교가 아닌, 모두의 노력과 이해로 동성애 차별금지 법안이 입법되는 순간,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가능한 순간, 울며 두드리는 그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까? 교리를 통해 동성 간 육체적 관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가톨릭의 입장 위에 이성적 견해를 덧붙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물음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만약 게이라도, 주님의 말과 바른 뜻을 찾아간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심판하겠습니까?”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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