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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포럼]혁신의 민첩함과 학문의 꾸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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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포럼]혁신의 민첩함과 학문의 꾸준함 진영현 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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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얼마나 빨리 변하는 걸까? 1차 산업혁명에서 3차 산업혁명까지 각각의 혁명적 변화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넘어서는 시간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을 겪은 현 세대는 생애주기에 두 번의 산업혁명을 겪는 첫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겠다. 전자혁명 이후 50년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이미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시대의 변화까지 논할 필요도 없다.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필자는 CD, USB메모리를 거쳐 이제는 모바일 기기에서 스트리밍을 통해 영화를 본다. 출장지에 도착하면 으레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받아 들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이제는 휴대폰이 지도와 다이어리, 카메라를 대신한다.

기업 간의 경쟁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그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전 같으면 10년 이상 걸리던 변화가 이제는 월 단위로 나타나고 있다. S&P500 지수에 포함된 대기업의 평균 나이가 1958년 61살에서 2015년 18살로 줄어든 것은 대기업도 변화의 속도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완승을 거두는 모습을 본 우리는 마음이 더욱 바빠진 것 같다. 테슬라의 전기차, 스페이스 X의 재활용 우주선, 구글의 자율주행차 등 급변하는 첨단 기술과 새롭게 창출되는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속도감 있는 혁신이다.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비하기 위해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M&A 등을 통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 '민첩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민첩하게 일어나고 있을까? 인간과 같이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겠다며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붙인 첫 모임이 있었던 것이 1956년의 일이다. 그 후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게 되기까지 60년이 걸렸다. 그 사이 인공지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무난하게 발전되어 오지 못했다. 한때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부족해서, 또 어떤 때는 아이디어를 구현해 볼 데이터가 충분치 못해 기대했던 것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때마다 관련 연구는 침체를 거듭했다.


차세대 가공기술로 주목을 받는 3D 프린터도 마찬가지다. 맞춤형 의수, 턱뼈를 제작했다는 뉴스로부터 새롭게 나타난 첨단기술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 기원은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86년 미국의 '3D 시스템즈' 사가 상용화 한 플라스틱 액체를 원하는 형상으로 굳히는 기술이 그것인데, 금형제작 등 특별한 용도로만 사용해 오다 최근 들어 가공할 수 있는 재료의 확대와 함께 차세대 가공기술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고 보면 혁신의 정점에 서 있는 기술들도 생각만큼 민첩하게 발생한 것은 아니다. 변화의 속도에 맞추어 나타난 '신기술'이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구상되던 기술들이 기술적ㆍ시간적 격차를 극복해 현재에 '재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적ㆍ시간적 격차를 뛰어넘을 수 있던 비결은 원래의 구상을 조금씩이지만 한걸음씩 진보시킨 꾸준함일 것이다.


어떤 연구는 당장에는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연구자 스스로도 그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연구도 많다. 1886년 헤르츠는 전자기파를 실험적으로 발견하고 난 뒤, 그 의미를 묻는 질문에 '앞서 발표된 이론을 증명한 것일 뿐, 그리 중요한 발견은 아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전파가 무선통신의 근간이 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효율성을 중요시 할 수밖에 없는 시장경쟁에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한 민첩함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민첩함을 유지하기 위한 연료는 꾸준함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시장에 맡겨두면 늘 부족할 수밖에 없는 연료의 공급은 정부와 사회가 학문의 꾸준함을 지켜 줌으로써만 지속될 수 있다.


진영현 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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