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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이방원과 김삿갓이 놀았다 '힙합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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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과거를 접합한 방송프로 히트…옛날아재들의 '랩' 들어보니

[아시아경제 권성회 수습기자] JTBC ‘힙합의 민족’이 인기다. 지난1일 첫 방송 이후 시청률을 끌어올리며 15일 3회 방송에서는 1.8%(닐슨 코리아 조사)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힙합의 민족은 김영옥, 김영임 등 50~80대 여성출연자가 젊은 래퍼들과 함께 힙합 공연을 펼치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특히 1937년생으로 80세가 된 김영옥은 20대 못지않은 열정적인 랩으로 시청자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흑인문화의 하나로 탄생한 힙합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한국에 유입됐다. 1989년 홍서범의 ‘김삿갓’이 한국 최초의 랩 가요로 꼽힌다. 지금처럼 화려한 라임과 플로우는 찾아볼 수 없지만 힙합 특유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에 의해서 힙합 음악이 국내에 소개됐고, 1997년 한국 최초의 힙합 앨범인 김진표의 ‘열외’가 발매되기에 이른다. 1990년대 말부터 드렁큰타이거, 조PD, 가리온 등에 의해서 현재의 한국힙합이 정립되기 시작한다.

힙합문화의 기본정신은 저항과 자유다. 기성질서의 변화를 도모하고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때문에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스웨거(Swagger)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래퍼들끼리의 배틀 랩, 디스전이 활발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것들을 ‘힙합정신’이라고 보면 한민족이 가히 ‘힙합의 민족’이라 불려도 이상할 건 없다. 다음과 같은 선조들의 얘기를 보면 말이다.



*한국 최초의 배틀 신청곡 - 구지가(龜旨歌)

원효와 이방원과 김삿갓이 놀았다 '힙합의 민족' 김수로왕릉(사진=답사여행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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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나오는 고대 가요다. 서기 40년경, 가락국 9명의 추장들이 김해 구지봉에 올라 자신들을 다스릴 임금을 보내달라고 신에게 부른 노래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끔찍한 가사다. 거북이 입장에서는 머리를 내놓아도 목숨을 잃고, 그렇지 않아도 잡혀 먹을 처지다. 이 노래를 아홉 명의 추장과 백성 300명이 함께 불렀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소위 ‘떼창’인 것이다. 수백명의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노랫말을 뱉으니 하늘에 있는 신도 겁을 먹었는지 감동을 받았는지 소원을 들어주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알 6개에서 각기 귀공자가 나와 6개의 가야를 지배하게 됐다. 그 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이가 바로 김수로왕이었다.


이 시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잡귀를 쫓는 주문이라는 견해, 신(거북)을 향해 지도자(머리)를 보내달라는 기도하는 견해,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것으로 본 견해, 농부의 동작을 그린 것으로 보는 견해, 집단 가무의 형태로 보는 견해 등이 존재한다. 어찌됐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며 하늘의 뜻에 저항하는 정신은 그야말로 힙합정신의 근본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프리스타일 음악가 - 원효


원효와 이방원과 김삿갓이 놀았다 '힙합의 민족' 원효대사(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신라 시대의 명승 원효대사하면 ‘원효대사 해골물’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태종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 결혼해 설총을 낳은 ‘파계승’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원효가 길거리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고 한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 주겠는가? 내가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


사람들은 이 노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으나 무열왕만이 이를 이해했다. 무열왕은 “이 스님은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는 당시 남편인 김흠운이 전쟁터에서 사망해 과부의 신분이었다. 무열왕이 요석궁의 관리에게 명해 원효를 찾아오게 했다. 원효를 그 관리를 보고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셨다. 관리가 원효를 요석궁에 데리고 가 옷을 말리고 그곳에 쉬게 했다. 이후 요석공주에게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설총이다.


원효가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다닌 것은 이때만이 아니다. 신라 시대 불교가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된 것은 원효의 힘이 컸다. 원효는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만들어 이름을 ‘무애(無碍)’라 붙이고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불교 교리를 쉬운 노래로 전했다. 무애는 ‘일체의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는 화엄경(華嚴經)의 구절에서 가져왔다. 원효는 입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귀로 부처의 가르침을 들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처럼 거리를 무대로 삼고 노래를 부른 원효의 모습에서 현재의 사이퍼(Cypher)나 버스킹(Busking)이 떠오른다. 원효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래퍼가 되지는 못했어도 최소한 노래로 강의하는 유명한 교수님이 되지 않았을까?



*한국 최초의 디스전 - 정몽주와 이방원


원효와 이방원과 김삿갓이 놀았다 '힙합의 민족' 선죽교에서 만난 정몽주와 이방원(사진=SBS 육룡이나르샤 캡처 화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고려왕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정몽주와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려 했던 이방원의 대결은 최근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와 같은 드라마에서도 수차례 재현됐다.


선공을 한 자는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정몽주와 만난 자리에서 그의 충절을 되돌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지어 부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것이 그 유명한 하여가(何如歌)다. 고려든, 새로운 왕조든 상관없이 백성들을 위하는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의 충절은 꺾이지 않는다. 그 역시 바로 시조를 읊어 응수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조 단심가(丹心歌)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고려라는 왕조를 향한 자신의 충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이 시조는 훗날 역설적이게도 조선시대 선비들에 사이에서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신하의 충성심을 노래하는 내용이 조선의 유교적 지배질서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두 라이벌의 디스전은 결국 ‘피’를 보면서 끝맺었다.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한 것이다. 자신의 뜻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각자의 언어로 노래함으로써 역사의 길이 남을 만한 장면을 만들어냈지만 그 끝은 비극이었다. 1990년대 미국 힙합신의 살벌한 디스전의 끝도 피로 물들었다는 사실이 머리에 스친다.



*한국 최고의 펀치라인 킹 - 김삿갓


원효와 이방원과 김삿갓이 놀았다 '힙합의 민족' 김삿갓 동상(사진=한국관광공사)


펀치라인(Punchline)의 본래 뜻은 ‘매우 웃기는 말’이다. 현재 한국 힙합에서 펀치라인은 대개 ‘신선하거나 깜짝 놀랄만한 가사나 구절’을 일컫는다. 청자의 뇌리에 박히는 펀치라인은 래퍼의 개성을 더욱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에도 펀치라인 킹이 등장한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바로 그렇다. 앞서 소개한 홍서범의 노래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 최초의 랩 가요의 소재로 괜히 김삿갓이 선정된 게 아니다.


김삿갓은 원래 이름이 김병연이다. 그는 과거시험에서 홍경래의 난 때 항복했던 김익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써냈다. 그러나 김익순이 그의 친조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후,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하여 큰 삿갓을 쓰고 다녔고 이 때문에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즉흥시(김삿갓 역시 프리스타일 음악가였다)를 많이 지었는데 특히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한 내용이 대다수였다.


김삿갓의 시는 언어유희를 많이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하루는 김삿갓이 개성에 들러 하룻밤 신세를 지려 했으나, 주인이 ‘불 피울 장작이 없다’며 문을 닫아버렸다. 이에 김삿갓은 간단한 시로써 주인을 조롱했다.


“邑名開城何閉城(읍명개성하폐성) 山名松岳豈無薪(산명송악기무신)

고을 이름은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아 걸며
산 이름은 송악인데 어찌 땔감이 없다 하느냐”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도 돋보인다. 김삿갓이 함경도를 방문하면서 당시 함경도 관찰사였던 조기영의 부패를 조롱한 시가 전해진다. 펀치라인뿐 아니라 그 메시지가 지배자를 향한 저항과 조롱이라는 면에서 역시 힙합정신과 닿아 있다.


“宣化堂上宣火黨 (선화당상선화당)
樂民樓下落民淚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함경도민함경도)
趙岐泳家兆豈永 (조기영가조기영)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행하고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모두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이 가문이 어찌 오래 가리오”


한자의 독음을 우리말로 바꾸어 읽는 기법도 눈에 띈다. 함경도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쓴 시다.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20(二十)부터 70(七十)까지 숫자를 활용한 시다. 이를 한자 그대로 읽지 말고 우리말로 바꾸면 다음과 같은 뜻풀이가 된다.


“스무 나무 아래 서러운(30, 서른) 나그네가
망할(40, 마흔) 놈의 집안에서 쉰(50,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70,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30, 서른, 설은=설익은) 밥을 먹으리라”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는 김삿갓이 한 서당에서 문전박대당한 후 쓴 시다. 풀이는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내 일찍이 서당인줄은 알았지만
방안에는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명도 못되고
선생은 와서 인사조차 않는구나”




권성회 수습기자 stre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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