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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50보와 100보는 분명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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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50보와 100보는 분명 다르다 이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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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보 100보'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와 같이 많은 사안들을 간단히 정리해버리는 마술적 언어로 흔히 쓰이고 있는 것을 만약 그 말의 원작자인 맹자(孟子)가 본다면 적잖이 당혹해하지 않을까 싶다. 싸움터에서 적군의 공격에 50보 뒤로 도망친 병졸이 100보를 도망친 병졸을 비겁하다고 나무랄 수 있느냐는 걸 얘기하는 이 고사는 우리 사회에서 잘못이면 다 똑같은 것이지 그 정도의 차이를 따지는 것은 구차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맹자가 이 고사를 꺼냈던 것은 "내가 다른 나라 군주에 비해선 선정(善政)을 베풀지 않느냐"고 자부하는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질타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사실 맹자가 시종 강조했던 것은 오히려 50보와 100보 간의 차이였다. 유학의 정치학 교과서라고 할 만한 '맹자'의 14편 261장에서 맹자는 거의 한결같이 군주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진전을 보이는 것을 긍정하고 독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100보보다는 50보가 더 나으며, 그렇게 하다 보면 50보가 30보 10보, 그 이상도 될 것이라고 맹자는 얘기했던 것이다.


'50보 100보' 얘기가 우리 사회에서 애용되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불건전한 근본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이 말은 현실을 반영하는 관용어를 넘어 하나의 구호처럼 현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돼 많은 사안들에서 현실을 바꾸는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권력에 대한 냉소와 만날 때 그 위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민나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라는 일본어풍의 유행어, '도긴개긴'이라는 토속어도 그에 가세해 일종의 주문이 된다.

선거 때는 이 주술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다. 4ㆍ13 총선거를 보름여 앞둔 지금도 이 주문이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다. 그 주술은 직접 나타나기도 하지만 '최악의 선거'이니 '막장 선거'이니 등의 말로 제 모습을 감춰서 나타나고 있다. 여든 야든 똑 같고, 이 후보나 저 후보나 똑 같으며, 정치는 으레 최악이고 국회는 바꿔봐야 막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이 선거판을 드리우고 있다.


분명 이번 총선을 앞두고 벌어져 온 혼탁상이 초래한 총체적인 실망이 그러한 악담과 비난을 불러올 만하다.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면서 법적 선거구가 몇 달 간 공백상태였던 무법 사태라든가 공천심사 과정의 구태가 그런 냉소를 가져올 만하다.

그러나 지난 국회, 이번의 선거를 과연 최악이며 막장이라는 말로만 단정할 수 있을까.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난 국회에서 많은 '선진적인' 시도들도 있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번의 국회가 만약 최악이었다고 한다면 그건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그것이어야 할 것이다. 국회와 정치에 대한 높아진 기대치에 비례한 상대적인 평가로서의 최악이라고 해야 공정할 것이다. 이번 선거나 공천에 대해서도 '막장'이라고 간단히 규정할 수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상향식 공천이라든가 숙의 배심원제 등 여러 새로운 제도들이 논의됐거나 시도됐다. 그것이 많은 현실적 사정들에 막혀 무산되거나 어설프거나 혼란스럽게 이뤄졌더라도 그 미완의 시도는 하나의 진통이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분명 퇴행도 있었지만 진일보도 있었다. 필요한 것은 왜 후퇴하고 실패했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진보를 만들었고, 무엇이 후퇴를 초래했는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작은 차이를 더욱 키워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선거 제도에 우리가 기대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작은 차이에 주목해야 그로부터 큰 차이가 만들어진다. 50보나 100보나 똑같다고 본다면 작은 도둑질이나 흉포한 강도질이나 처벌의 형량을 달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작은 차이에 주목하는 것. 그것은 유권자의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는 국민들의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정치가 만약 타락했다고 한다면 정치의 타락은 홀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유권자가 작은 차이를 보려고 하지 않을 때, 50보나 100보나 똑 같다고 여길 때 정치는 늘 100보에 머물 것이다. 그것이 정치로부터의 복수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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