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아닌 기계로선 처음…한국기원측, 구글에 리턴매치 요청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을 통해 프로 바둑기사로서 정체성을 갖춰가고 있다. 바둑을 통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을 넘어서 바둑기사 알파고라는 존재가 계속해서 세계무대를 누빌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15일 중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알파고는 지난 13일 이세돌 9단에게 패하면서 세계 바둑 랭킹 4위에 올랐다. '고레이팅스'라는 바둑 랭킹 사이트가 집계한 것이다. 이 사이트는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 판후이를 상대로 5승을 거둘 때 점수를 집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패가 없는 선수는 순위에 들지 못하는 규정 때문에 알파고의 이름이 없다가 이번에 이 9단에게 지면서 4위에 오르게 됐다. 고레이팅스는 알파고에게 3533점을 줬다. 세계 랭킹에서도 3521점인 이 9단을 제친 것이다. 이 9단은 5위로 내려갔다.
이 순위에서 1위는 3621점을 기록 중인 중국의 커제 9단이다. 2위는 한국의 박정환 9단(3569점), 3위는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3546점)이다. 이 랭킹만 보면 알파고가 도전할 수 있는 '인류 대표' 바둑기사는 3명이나 더 있는 셈이다. 세계 랭킹까지 얻은 마당에 알파고가 계속해서 바둑기사로 활동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알파고 개발에 참여한 구글 딥마인드의 라이아 해드셀 연구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알파고가 적절한 순위에 올랐다. 세계 4위다. 커제 대결 준비 됐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커제 9단도 알파고와의 대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커제 9단은 이 9단이 알파고에 패한 뒤 자신의 SNS와 중국 언론 등을 통해 "알파고와 대국하기를 원하며 이길 확률은 60%"라고 했다. 이 9단이 1승을 거준 뒤에도 "나의 알파고에 대한 승률은 60~70%며 알파고는 절대 무적이 아니고 약점과 돌파구가 있다"고 했다. 알파고와 대결해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커제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성사 여부는 구글의 중국 사업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알파고 사업의 결정권은 개발사인 딥마인드에 있다"고 했다.
커제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알파고가 프로 바둑기사들과 대결을 이어갈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국기원은 이미 2차 대국을 추진 중이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14일 "구글 딥마인드에 다시 한 번 대결해보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4국이 끝난 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에게 이 같은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딥마인드 측에서는 "구글 본사와 상의하겠다"고 전했다.
또 한국기원은 리턴매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바둑기사로서 알파고의 실력을 인정해 프로 명예 9단증으로 주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바둑계 발전에도 도움이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고 한다. 명예 9단증은 이 9단과 알파고의 5국이 끝난 뒤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이 9단과 다섯 번 겨뤄 승리를 거머쥔 세계 랭킹 4위, 알파고 9단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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