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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은행장' 하영구, '검투사' 황영기에 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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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직업이 은행장'으로 불리는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연초부터 은행에 대한 투자일임업 허용을 역점 과제로 삼아 총력을 기울여왔다. 선점한 시장을 사수하려는 '검투사'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막아섰지만 결과는 하 회장의 '판정승'이었다. 금융당국은 다음달 14일 출시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은행에도 투자일임업을 허용키로 했다.


ISA는 예금과 적금, 펀드, 채권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담아 투자할 수 있어 '만능통장'으로 불린다. 금융업계는 첫 해 시장 규모 24조원, 5년 후 15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증권사와 달리 고객에게 구체적 운용지시를 받아야하고 상품 홍보도 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는데 투자일임업 허용으로 숨통이 트인 셈이다. 증권사 지점이 1200여개인 반면 은행 지점 수는 7300여개에 이른다는 접근성 차이에서 보면 사실상 은행이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순식간에 은행과 증권사의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이번 사안은 각 업계를 대표하는 하 회장과 황 회장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하 회장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투자일임업을 은행에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고객의 선택 폭, 원스톱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공개적으로 포문을 열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접근성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황 회장은 '검투사'라는 별명답게 강한 어조로 맞받아쳤다. 그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금융업 체계 근본을 흔드는 것"이라며 "은행은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금융회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은행에 운용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고객이 은행을 통해서는 한 가지 형태의 ISA만 가입할 수 있다면 투자자 선택권을 제약하고 불편을 초래한다"며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하 회장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물론 증권업계도 비대면 일임계약(온라인 가입)을 증권사에 허용한다는 '당근'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ISA라는 큰 시장을 놓고 경쟁한 명분싸움에서 밀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황 회장은 지난 12일에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금융투자업계의 반발이 컸지만 ISA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수용했다"며 "은행권의 포괄적인 투자일임업 진출 논의는 이것으로 종결키로 했다"고 밝혔다. ISA에만 한정된 허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온 선후배(황 회장 71학번, 하 회장 72학번)이면서 각 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 회장은 1981년 씨티은행에 입행해 자금담당 이사를 거쳐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한미은행 은행장,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씨티은행 은행장을 역임하고 2014년 말 은행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 34년간 은행에서 한 우물을 팠으며 14년간이나 은행장을 맡아 '직업이 은행장'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은행업 사정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하 회장은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위기 상황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대표자 총회에서 "은행산업은 유례없는 저성장 저금리 속에서 예대마진의 지속적 축소로 수익성이 악화됐으며 인터넷전문은행 등과 업권 칸막이를 벗어난 치열한 경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생존 차원에서라도 투자일임업 허용이 돼야 한다고 보고 역량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황 회장은 1964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장, 삼성전자 자금팀장 등을 거쳐 삼성투자신탁운용 대표, 삼성증권 대표, 우리은행지주,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지냈다. '삼성' 출신으로 은행보다는 보험과 증권 등 자본시장 쪽에서 이력을 쌓아왔다. 공격적인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으로 '검투사'란 별명을 갖고 있다. 지난해 2월 금융투자협회장에 취임해 1년간 연기금의 자본시장 참여와 주식형펀드 시장 확대 등 '파이' 키우기에 주력해 왔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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