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한국 야구 대표팀이 세계랭킹 상위 12개국의 국가대항전인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일본을 이겼습니다. 괴물 투수 오타니에게 막혀 패색이 짙었지만 9회 초 기적 같은 역전에 성공해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를 두고 11ㆍ19 대첩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417년 전인 1598년 노량해전이 있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물론 역사에 기록된 11월 19일의 노량해전은 음력이기 때문에 같은 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417년 전 일본에게 승리를 거둔 날 한국 야구가 극적인 승전보를 올린 셈입니다.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과 일본이 벌인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이 해전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이어진 일본과의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순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철군하는 일본의 퇴로를 막아 적선 50척을 격파하고 200여명을 수장시켰습니다.
야구에서 한 번 이긴 것을 두고 굳이 노량해전까지 거론하는 이유는 이번 한일전이 열리기로 한 날이 417년 전 노량해전이 있었던 11월 19일이 아닌 20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준결승을 한 뒤 결승전을 앞두고 휴식일을 갖기 위해 일정을 하루 앞당겼습니다. 준결승 상대는 안중에도 없었고 당연하게 결승에 진출해 우승을 하겠다는 의중이었습니다. 참가국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도 없었습니다.
이런 식의 대회 운영 때문에 일본은 노량 앞바다에서 무참하게 패했던 그날 도쿄돔에서 거짓말 같은 역전패를 당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참가국들이 불만을 터뜨린 것은 일본 입맛에 따라 제멋대로 바뀌는 이런 일정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심판의 판정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고 일본과의 경기인데 버젓이 일본인 심판이 배정되기도 했습니다.
개막전은 일본에서 하고 나머지 예선은 대만에서 하는 일정은 그렇다 손치더라도 우리 대표팀에게는 개막전에 앞서 경기장에서 연습하고 적응할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예선을 치를 때 다른 나라는 밤과 낮 경기를 오가는 부담스러운 일정을 견뎌야 했지만 일본은 저녁 경기만을 했습니다. 한국이 준결승을 위해 대만에서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편도 새벽 시간에 배정했습니다.
이런 마뜩잖은 꼼수 운영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 번에 뒤엎을 기회가 있다는 스포츠의 묘미를 야구대표팀은 9회에 보여줬습니다. 야구뿐만 아니라 세상살이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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