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의원. 그는 개혁ㆍ진보 세력의 창과 같은 존재다. 그의 거침없는 언사는 언제나 전선을 관통한다. 그의 말은 때로는 예리한 창끝으로, 때로는 둔탁한 망치가 되어 상대편을 향해 날아간다. 오늘날 정청래라는 정치인을 한 명의 야당 국회의원 이상의 의미를 갖게 해준 것은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막말'이라는 말은 올해 정 최고위원에게 있어서 상처가 되는 단어가 됐다. 올해 정 최고위원은 정치 역정에서 최고와 최악의 시기를 연달아 보냈다. 2월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그는 주승용 새정치연합 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했다. 선거 초반 최고위원 단상에서 그가 손을 흔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반전이었다. 그의 거침없는 언사는 대승의 주요 배경이었다. 그는 현장연설이 있을 때마다 "당 대포가 되겠다"고 했다. 자신이 내뱉는 언사는 소총이 아닌 대포라는 자신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제1야당의 존재감을 회복하겠다는 그의 약속은 결국 야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대의원 투표에서 꼴찌를 했던 그가 국민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해서 종합 2위로 최고위원이 됐다.
올해 4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그의 화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 대정부질문과 당 주요 회의 등을 통해 파상 공세를 펼쳤던 그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기사가 되고 주요 포털의 인기 검색어가 되곤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5월8일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4ㆍ29재보궐 선거 결과를 두고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며 사퇴 의사를 밝혔던 주승용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에 대해 정 최고위원은 공개 회의에서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직후 주 최고위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씀 치욕적이다"며 최고위원에서 사퇴했다. 천정부지로 올라갔던 정 최고위원의 인기는 역풍으로 고꾸라졌다.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고 세상은 그를 '막말의 달인'으로 낙인찍으며 손가락질 하기에 바빴다. 대포가 아군을 향했다는 비아냥에도 시달려야 했다.
정 최고위원이 '공갈'발언을 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당내외 인사 등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는 주 최고위원이 언급한 '공개', '공정', '공평'의 발언을 들은 뒤 즉석에서 라임(rhyme)을 따라 '공갈'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이 즉흥적으로 화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이라 생각했던 이 말은 결국 '막말'이 됐고 그의 정치인생을 송두리째 망칠 뻔했다.
'공갈'발언 이후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당직 자격정지 1년 처분이 내려졌다. 혹자는 이 처분을 두고서 20대 총선 첫 공천 탈락자로 보기도 했다. 지역위원장 자격을 잃게 되기 때문에 공천 배제는 당연하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재심을 통해 그의 징계는 6개월 자격 정지로 바뀌었고, 이마저도 사면될 수 있었다. 그는 당 최고위에 복귀한 직후에 "앞으로 더 지혜롭게 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뒤 이어 "그러나 야당다운 야당이 돼서 할 말도 하겠다"고 덧붙였다. 여전했다.
그는 왜 막말을 할까? 정 의원은 책을 통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나도 욕먹지 않고 살고 싶고, 우아하게 미사여구만 써서 말하고 싶다. (중략) 누군가는 이 왜곡되고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발언해야 한다. 바로 잡자고, 제대로 하자고, 그래서 내가 나선 것이다. 그 누군가가 되자고, 작정하고 각오하고 말이다. 나는 그저 이 세상 속에 치열하게 살 뿐이다."
막말은 그가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가는 방식인 셈이다.
정 최고위원의 막말 대상에 최고지도자도 예외일 수 없었다. 오히려 가장 호된 공격을 받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그는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바뀐 애'나 '꼬꼬댁' 등을 써가며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논란이 한참 제기됐을 당시 자신의 SNS를 통해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들 감빵으로"으로라는 글을 썼다. '바뀐 애'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으로 대선 당선자가 바뀌었음을 주장하는 네티즌들이 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이 말을 활용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으로 대선결과가 바뀌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당시 국정원 책임자들의 형사처벌 필요성을 밝혔다. 그가 쓴 꼬꼬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댁들(꼬꼬댁)의 거짓말'을 의미한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논란이 한창 제기됐을 당시에 그는 "이완구 총리는 정치자금법 혐의보다 거짓말 논란에 따른 국민정서법 위반혐의가 더 무겁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사과 없이 엉뚱하게 정치개혁을 말한다. 자기개혁부터 하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댁들(꼬꼬댁)의 거짓말에 국민들은 질렸다"고 말했다. 축약어지만 '꼬꼬댁'이 박 대통령을 겨냥한 단어라는 해석도 있다.
물론 언론도 비판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일부 방송이 정 최고위원의 '꼬꼬댁' 발언에 대해 여성 비하적인 발언이라고 문제제기를 하자 그는 방송사를 상대로 '꼬꼬방'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꼬꼬방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루 종일 편파 방송'의 약자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올해 취임 3주년 맞은 박 대통령을 향해 정 최고위원은 "집권 3년차를 맞는 역대 대통령중 유일하게 업적이 없다"며 "집권초에는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집권 2년차는 세월호 참사로, 집권 3년차는 성완종 리스트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실패 등 업적은 없고 업보만 생각난다"고 혹평했다.
자신과 같은 당이라고 해서 봐주지도 않는다. 그는 2ㆍ8전당대회 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에 대해서도 '공격'을 퍼부었다. 참배 다음날 정 최고위원은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을 사과했다고 해서 유대인이 히틀러 묘소를 참배할 수 있겠느냐"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해서 우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천황 묘소에 가서 절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두 전 대통령도 문 대표도 모두 정 최고위원의 비판의 칼날 위에 섰다.
이처럼 거친 언사를 쏟아 내놨지만 정 최고위원은 스스로를 눈물이 많은 남자라고 말한다. 실제 세월호 특별법 논란 당시에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 곁에서 24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SNS를 통해 "착하기는 쉽다, 그러나 정의롭기는 어렵다. 나도 쉬운 길, 편한길 착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정의로운 길이 어려운 길이라도 나는 그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막말은 계속될 듯하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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