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20만명 줄었는데, 학원비 10兆 증가
학원가의 과목 '쪼개기'가 만든 아이러니
영어 '파닉스반·문법 강화반…'
수학 '도형수학·연산강화·사고력수학…'
서울 학생 2명에 학원 수업 1개꼴
사교육 시장 30조원. 남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모의 불안감과 욕심, 갈팡질팡 교육 정책이 낳은 공교육 해체는 '7세 고시(高試)' 현상으로 대변되는 사교육 팽창을 낳았다.
통계청과 교육부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아이들 학원비로 지출한 돈은 2020년 19조4000억원에서 2024년 29조2000억원으로 10조원가량 늘어났다. 매년 2.5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올해 통계가 발표될 즈음엔 30조원을 훌쩍 넘어 3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식 통계에 잡히는 수치만 이 정도이고 통계 밖에 숨은 돈은 훨씬 더 많으리라는 것을 아이 입시를 치러 본 부모라면 체감적으로 알고 있다.
100조원 안팎인 국가 전체 교육 예산의 30% 넘는 엄청난 돈이 사교육 지출에 투하되는 현상은 저출산과 결혼 기피, 소비 위축의 악순환을 초래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선뜻 납득하기 힘든 질문에 부닥친다.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든다는데, 왜 사교육비 지출은 갈수록 늘어만 나는 것일까. 아시아경제 취재팀은 학원가 현실을 취재하는 한편, 국회의원실과 함께 자료를 분석해 그 답을 찾아봤다.
과목을 쪼개고 또 쪼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초중고 학생 수는 534만6000명에서 513만2000명으로 21만4000명이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가계가 학원비로 지출한 돈은 19조4000억원에서 29조2000억원으로 10조원가량 늘었다.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운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를 따져보면 2020년 363만원에서 2024년에는 567만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1인당 600만원을 넘어설 기세다.
그 비밀은 뭘까. 답은 학원들의 '쪼개기'에 있었다. 마치 생물이 성장하기 위해 세포분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사교육 학원들은 과목을 쪼개고, 취학 연령별로, 요일별로, 또 학생 수준별로 세분화된 반을 개설해 시장 파이를 키우고 있었다.
아시아경제가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과 함께 '서울시교육청 등록 학원·교습소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초 기준 서울시 25개 구청 관할 구역에 있는 학원과 교습소의 수는 2만8063개였다.
세부적으로는 학원이 1만4796개, 교습소는 1만3267개다. 이들이 개설하고 있는 과목의 수는 무려 33만9535개에 달했다. 학원 한 곳에서 교습하는 과목이 12개꼴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영어학원들의 경우 과거엔 독해나 말하기 과목이 위주였다면 이제는 파닉스반, 문법 강화반 등이 추가돼 있다. '○○강화반' '○○집중반' 형태로 같은 과목 안에서도 난이도에 따라 세분하거나, 특정 타깃(목표) 위주 교과반을 신설하는 식으로 '교과목 세포 분열'이 이뤄진 것이다.
요즘 수학학원 학원의 경우 기초수학, 내신수학, 공통수학, 몰입수학 등으로 교과목이 나뉘는 것은 기본이다. 학생이 한 학원에서 두세 개 반을 동시 선택해 수강할 수 있도록 한 곳이 많아지면서 과거 수능 대비 대형 단과학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과목별 선택 강의 방식이 전 연령대의 대다수 학원으로 퍼져 있었다.
서울 학생 2명당 학원 반 1개
지난해 기준 서울의 초중고 학생은 76만6206명이며 이 중 86.1%(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통계)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서울의 학원과 교습소가 개설하고 있는 과목이 약 34만개인 점을 감안하면 줄잡아 서울의 학생 2명당 학원 반이 1곳 개설돼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개설된 과목 하나를 학생 2명이 듣는 경우도 극히 예외적으로 존재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원에서 한 과목당 최소 수강인원은 4명 이상이다. 다시 말해 학생 한 사람당 2개 이상의 사교육 학원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교육 공화국'이 따로 없다.
이는 결국 사교육에 투입하는 시간의 증가와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서울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초 93.1%, 중 85.1%, 고 74.7%이며 이들은 주당 9.0시간, 9.8시간, 9.2시간씩 사교육에 참여(평균 9.3시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통 학원 과목 수업은 격일로 받는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학생 1인당 수업을 2, 3개씩 듣는다고 가정할 때 나올 수 있는 시간이다.
사교육에 참여한다는 86.1% 서울 학생들이 월평균 사교육비는 78만2000원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학원이나 교습소의 과목당 평균 학원·교습비는 학원 34만5845원, 교습소 19만6319원(상하위 극단값 10% 제외)에 달했다. 이 역시 학생 1인당 2~3개 과목의 사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통계다.
'격일반' 과목 개설의 비밀…끼워넣기
사교육 시장의 파이를 키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학원들은 '특별한' 방법을 쓴다. 대표적으로 매일반 대신 격일반, 주 2회반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격일반이나 주 2회반으로 운영하면 매일반보다 강의 시간 대비 평균 비용을 더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학부모나 학생 입장에선 중간에 다른 과목을 끼워 넣을 수 있게 되고, 학원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다. 학생 한 명이 일주일에 5~6과목도 수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교생 학부모 김모씨(45)는 "아이가 초등학교 때 과학실험, 학습지, 영어 학원, 수학 학원, 악기 수업 등을 들었다"면서 "학원 5~6개 다니는 게 많은 것 같아도, 영어와 수학을 제외하면 주 1회 수업이어서 가능하다"고 했다.
사교육 대상 연령은 계속 확대일로다. 영어학원 수강 대상이 영유아기로 낮아지고, N수생이 늘면서 입시학원의 소비자군(群)도 확대되는 것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 소장은 "사교육 시장이 고비용화, 저연령화로 가고 있다"면서 "지금은 사교육 소비가 식비 지출처럼 필수화돼 가고 있다"고 했다. 김대욱 경상국립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어떤 학원들은 2시간 수업하는데 1교시당 40분씩으로 쪼개서 3교시로 책정해 놓기도 한다"며 "1교시당 20만원씩 책정하면 2시간 수업에 60만원까지 학원비가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비 부담→저출산
2024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계지출은 391만원으로, 이 중 이자·세금 같은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소비지출은 290만3000원이었다. 초중고 월평균 사교육비가 47만4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소비지출의 16.3%를 학원비로 쓰고 있단 얘기다.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가계도 14%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비율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다.
사교육비는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해 저출산 문제로 이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월 한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높은 사교육비 지출'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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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대 교수(경북행복재단 대표)는 사교육비 지출이 저출산을 유발하는 일종의 '압박 비용'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미 사교육비는 정책적 지원만으로는 줄이거나 해결이 어렵고 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압박 비용'화했다"며 "인재 중심의 성장 전략을 꾀했던 한국 사회에서 교육 경쟁 구조가 형성됐고, 이어서 압박 비용을 낳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압박 비용을 없애려면 산업 생태계 개편은 물론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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