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상처] 피해자 인터뷰
"사회가 학대 아동 보호 나서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아동학대 피해자 김모씨(35)는 여섯 살 때 부모의 이혼 후 계모와 함께 살게 됐다. 그의 유년은 따뜻한 보호와 애정이 아닌 외면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어린 시절 겪은 학대는 단지 아픈 기억으로 끝나지 않았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그의 삶을 깊게 파고들었다.
◆꺼내기조차 힘든 그 시절
김씨는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시 자택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생모, 생부, 계모에게 받은 상처를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외면당한 채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스스로를 돌봐야 했다. 김씨는 "부모는 제 앞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집기를 던지며 싸웠다. 부부싸움이 끝나면 집에 혼자 방치되곤 했다. 나는 늘 혼자였다"고 회상했다.
부모의 이혼 후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계모는 김씨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고, 아버지는 이를 묵인하거나 동조했다. 김씨는 "속옷만 입은 채 쫓겨난 적도 많았다"며 "너무 추웠던 어느 날 밤엔 아파트 지하실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보낸 시간은 어린 그에겐 매일이 악몽이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고, 생부와 계모 사이에서 동생이 태어난 뒤 김씨는 생모가 있는 뉴질랜드로 보내졌다.
그곳도 안전한 안식처는 아니었다. 생모의 남자친구는 김씨의 존재를 불편해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김씨를 기다리고 있던 건 더 거칠어진 학대였다. 계모는 "네가 그 모양이니까 네 엄마가 너를 버린 것이다", "너는 버려진 놈이니까 맞아도 싸다"며 학대를 서슴지 않았다. 계모는 말로, 손으로, 온몸으로 김씨를 짓눌렀다. 반지를 낀 손으로 때린 상처는 그의 머리에 지금도 흉터로 남아 있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외삼촌이 학대를 의심해 신고했고, 아동학대 조사관이 집을 찾았다. 하지만 김씨는 계모의 보복이 두려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당시 조사는 '방임에 따른 단순 정서학대'로 결론지어졌고 아무런 보호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김씨는 세상 누구에게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은 김씨의 삶 전반을 지배했다. 학창 시절, 사회생활 어디서도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유일한 친구라고는 뉴질랜드에서 살 때 옆집에 살았던 친구 한 명뿐이었다. 누군가 친절을 베풀면 먼저 의심부터 들었다. '왜 나한테 잘해주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닐까'라며 끝없이 경계하며 사람들과 거리를 뒀다. 학대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깊게 각인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김씨는 "어린 시절이 계속 떠올라 괴롭다"며 "학대 피해는 절대로 극복될 수 없고 평생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처를 딛고, 다시 아이들에게
김씨는 성인이 된 후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아이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삶에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아동학대 생존자들을 위한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 아동학대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8박 9일간 제주도를 도보로 완주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며 "처음엔 서먹했던 아이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새 함께 눈물 흘리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이들을 보며 과거의 나를 마주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아직도 아동학대 뉴스를 접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는 김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두려움에 질려 떨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며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이어 아동학대는 단순히 가정 내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씨는 "또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책임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결국 피해 아동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그 고통은 사회 전체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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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법이 개정돼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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