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인식 대비 낮은 처벌수위
성적학대·살인미수도 집행유예
"피고인이 일부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피고인에게 다른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한다."(2025년 1월 17일 서울중앙지법)
"피해 아동이 피고인 처벌을 원치 않고 있고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피고인이 구금되면 부양가족이 곤경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2025년 1월 21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올해 1~4월 아동학대 형사 사건 판결문 일부다. 이 기간 아동학대로 1심 공판을 받은 가족·친인척 피고인 가운데 4.6%에게만 실형이 선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경제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서비스에서 '아동학대'를 키워드로 검색해 나온 판결문 가운데 아동의 가족·친인척이 가해자(피고인)인 64건을 분석한 결과다.
◆대부분 집행유예·벌금형 그쳐
대부분의 가해자가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구체적으로는 집행유예(75%·48건), 벌금형(18.7%·12건), 징역 1년 미만(3.1%·2건), 징역 2년 미만(1.5%·1건)이었다. 실형이 선고된 3건의 경우 단순 아동학대뿐만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특수폭행, 음주운전·위험운전치상 혐의까지 고려된 결과여서 실제 아동학대 혐의에 대한 형량은 그보다 적을 수 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성적 학대행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아동학대 살해·치사(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아동학대중상해(3년 이상의 징역) 등을 규정하고 있다. 법정형은 무거운데 실제 법원에선 그보다 훨씬 가벼운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지난 1월 23일 성폭력특례법 위반(친족관계 준강제추행)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은 지난 2월 10일 피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첫 사건 피고인은 방에서 자고 있던 13세 의붓딸을 추행했고, 둘째 피고인은 6세 친딸과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던 중 강제 추행을 했다. 두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있는 점, 피고인의 배우자와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했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월 9일 살인미수 및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자신의 딸과 함께 죽으려다가 미수에 그친 피고인에게 "이혼 후 전 남편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양육 부담 및 우울증" 등의 감경 요인이 있다고 봤다.
◆학대장소는 집, 가해자는 남성 많아
피해자는 남아(32명), 여아(30건), 미상(2명)이었다. 나이별로는 10세(8명), 1세·11세(각 7명), 15세(6명), 8세(5명) 등이었다. 학대가 발생한 장소는 집안(51건), 길가(11건), 미상(2건)으로 분석됐다.
가해자는 남성(49명)이 여성(15명)보다 많았다. 구체적으로 친부 39명, 친모 14명, 계부 7명, 계모 1명, 친인척 3명이었다. 아동학대사례 유형별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과의 관계를 보면 친부의 경우 중복학대(14건)와 신체학대(13건), 친모의 경우 방임·유기(9건)가 많았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지난 1월 22일 특수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그는 15세 아들이 형과 다툰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같은 날 부부싸움 도중엔 흉기를 들고 아내와 피해아동을 위협했다.
청주지방법원은 지난달 15일 아동복지법위반로 기소된 피고인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는 정식 입양 절차를 밟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친딸을 넘겼다.
이처럼 처벌이 약한 것은 아동복지법의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아동 복지 실현'을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이다. 못된 부모라도 부모의 돌봄이 우선이고, 또 부모가 감옥에 갈 경우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갈수록 아동학대는 중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아동학대 형량을 높이기 어려운 것은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강한 처벌은 가정으로 복귀해야 할 수 있는 아동을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며 "다만 타인에 의한 아동학대의 경우 부모의 학대와 구분해서 처벌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 민법이 개정돼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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