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그 길고 뜨거운 잔혹史
질투(嫉妬) 한자엔 모두 '女' 들어가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하지만
정지상ㆍ김부식처럼 남성간 재능 다툼도
인류 최초의 질투는 카인과 아벨 사이에서 일어난 감정일 것이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인간의 첫 살인극은 이렇다. 아담과 이브(하와)는 두 아들을 두었다. 큰 아들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농부였고 둘째 아들 아벨은 양치기였다. 그들은 하늘에 생산물을 바쳤는데, 형은 곡식을 바쳤고 아우는 양의 첫 새끼와 기름진 부위(지방질)를 바쳤다. 신은 아벨의 제물은 반겼으나 카인의 것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질투에 눈이 먼 카인은 동생을 죽였다. 신이 "네 동생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카인은 반문한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신이 아벨의 제물만을 반긴 것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명이 있으나 유목민의 선민(選民)의식이 담겼을 가능성이 있다. 동생을 죽이고 난 뒤의 카인의 태도는 질투하는 자의 대책 없는 분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 질투는 구석기 시대부터 유행돼온 남녀 애정전략으로서의 질투와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신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격한 분노의 감정으로 변질돼 폭발한다. 이 질투 또한 인간이 지닌 오래된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카인의 살인적 질투는 이 땅의 신라에서도 일어났다. 화랑제도 이전에 있었던 원화(源花)끼리의 질투였다. 삼산공(三山公)의 딸인 준정(俊貞)은 많은 여성 낭도를 거느린 원화였다. 법흥왕의 딸 남모공주(南毛公主)는 백제왕실 여인의 딸로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곧 백제 보과공주의 소생으로 또한 뛰어난 미인이었다. 왕실의 태후가 특히 남모를 아껴 원화로 삼으려 했고 준정을 밀어내려 했다. 준정은 남모에게 술을 마시자고 유혹해서 물속에 밀어 넣어 죽였다. 남모의 낭도들이 이를 폭로해 준정 또한 사형을 당한다. 이 사건은 질투로도 볼 수 있지만 일종의 사제(司祭)를 맡은 여인들의 권력다툼이기도 했다. 총애를 상실한 뒤 그 분노가 경쟁자에게로 옮겨가 범죄로 이어지는 상황은 카인, 아벨의 경우와 비슷한 점이다. 박정희 시절의 김재규와 차지철의 갈등과 비극도 이 양상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 같은 질투가 아닌, 남녀간의 사랑을 수호하고 쟁취하기 위한 질투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콩쥐팥쥐와 같은 동화들은 질투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 질투의 핵심은 여성들 간의 아름다움의 경쟁에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질투 사건은 옛 중국 한나라 유방의 아내 여태후(BC 241~BC 180)가 척부인을 질투한 일일 것이다. 남편이 죽은 뒤 여태후는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온 후처 척부인을 잡아들였다. 그녀를 삭발시키고 혀를 깨물어 스스로 죽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고 붉은 죄수복을 입혀 감옥에 가뒀다. 조나라의 왕이었던 척부인의 아들을 죽인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여인의 사지를 자르고 눈을 뽑고 귀에는 유황을 붓고 코와 혀를 베었다. 그리고는 살아있는 고깃덩이를 돼지우리에 버린다.
질투(嫉妬)라는 말의 한자 속에는 모두 '여(女)' 자가 들어가 있다. 일부다처제가 보편적이었던 동양의 전통적인 남성사회에서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여성들의 치열한 전쟁은 불가피했는데 이것을 제도로 막아보려는 노력들이 있어 왔다. 조선시대에는 칠거지악(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합법적인 7가지 이유)이란 희한한 선악개념이 만들어졌고 그 핵심조항에 '질투'를 넣어놓았다.
구석기 시대부터 남녀 간의 러브게임의 한 양상으로 자리 잡아온 질투는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여성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치부돼왔고 죄악으로 간주해 철저히 단죄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유럽은 남성의 질투심에 관한 인상적인 스토리를 남기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오셀로'는 무어인(아프리카인)이라는 콤플렉스를 지닌 장군 오셀로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고 생생하게 그려냈다.
부하 이아고는 그에게 갓 결혼한 아내 데스데모나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의심을 하도록 만든다. 백인 부관인 카시오와 말이다. 이아고는 이런 명대사를 남긴다. "오, 질투심을 조심하오. 그것은 희생물을 비웃으며 잡아먹는 푸른 눈의 괴물이랍니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결국 오셀로는 아내를 죽이는 선택을 하고 만다. 셰익스피어의 관점에서 '질투'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감정이 아니며 사랑을 지키는 오래된 본능도 아니며 오직 삶을 망치는 눈먼 격정(激情)일 뿐이다.
총애를 쟁탈하려는 경쟁도 아니고 남녀 간의 짝 지키기 전략도 아닌 '제3의 질투'가 있다. 이 질투 또한 역사가 깊다.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희곡과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로 만들어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두 천재 사이에 일어난 질투의 비극을 담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와 이탈리아 출신의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그저 수수께끼일 뿐이다. 살리에리는 빈에서 모차르트를 만난 뒤 최고의 천재라는 자부심을 접어야 했고 만년 2인자로 머물 수밖에 없음에 고통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음악가들을 규합해 모차르트의 일을 방해했다는 얘기가 있으며 자신이 '최고'로 남기 위해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둘 다 천재였지만 2인자가 1인자를 질투하는 상황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상상력을 자극해 희곡과 오페라 속에 새겨졌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고려(高麗) 버전이 있다. 정지상( ? ~1135)과 김부식(1075~1151)의 재능 경쟁이 그것이다. 김부식이 정지상의 시적 재능을 질투해 그를 죽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개경(평양) 출신이었던 정지상이 수도를 그곳으로 옮기자는 묘청의 주장에 동의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김부식이 이 난을 제압했던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이 시에 관한 논쟁을 펼친 것은 주로 후대의 가십성 산문에서 오르내렸는데 내용은 이렇다. 정지상이 쓴 시의 구절 "숲속 궁궐의 범어(종소리)가 잦아드니/산의 빛깔이 맑아져 유리같구나(林宮梵語罷 山色淨琉璃/임궁범어파 산색정유리)"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 김부식이 그 시 구절을 빌려달라고 얘기했다가 일언지하에 퇴짜를 맞았다. 그 후 정지상을 죽이고 나서 이제 자신이 고려의 1인자라고 생각하고 김부식이 시를 읊는다.
"버들잎 빛깔은 천 가지가 푸르고
복사꽃 빛깔은 만 송이가 붉도다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유색천사록 도화만점홍)"
그날 밤 꿈에 정지상이 나타나 김부식의 시를 내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시라는 건 모름지기 스스로 기운생동해야 하는 것인데, 굳이 인간의 잔머리로 숫자놀음이나 하고 있으니 그게 뭐란 말인가?" 그러면서 고쳐준 구절은 이렇다.
"버들잎 빛깔은 가지가지 푸르고
복사꽃 빛깔은 송이송이 붉도다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유색사사록 도화점점홍)"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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