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의 신' 되기까지…김해경 국민은행 북부지역본부장의 발품사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형편에 대학 꿈 잠시 접고 택한 은행
영업의 영자도 모르던 초보가 점장 2년차에 평가대회 은상
8년만에 여의도로 파격 승진, 끈기 갖고 버티는 힘이 중요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사진=윤동주 기자] "미친 듯이 살고 싶다. 인생이란 어린이 놀이터가 아니다." (전혜린 저서,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中)
1977년 조계사 대웅전 앞.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고생이 서성이고 있다. 불상 앞에서 기도한 후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곧 학교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책을 들고 있는 손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학교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다시 주저앉는다. 밀린 등록금이 그의 발길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잣집 딸로 귀하게 자라왔던 그는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못 갈 것이란 상상 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기울어진 집안 형편에 일순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순간 그녀를 일으켜 세운게 바로 전혜린 작가의 에세이 집이었다. '인생이란 어린이 놀이터가 아니다'란 문구를 따라 쓰며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그 무렵 담임 선생님도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출석일수가 부족해 졸업을 못 할 위기에 처한 그를 대신해 사정위원회를 열어줬다. 대학 예비고사 원서도 접수해줬다.
그러나 대학문턱은 너무 높았다. 다시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찰나 '국민은행' 추천서를 받았다. 은행 입행 후 야간대학에 가면 된다는 달콤한 얘기와 함께. 김해경 KB국민은행 북부지역본부장이 은행원으로 첫 발을 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든 대학을 가고 싶어 은행에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다니고 있어요. 당시엔 은행이 아닌 대학을 가는 게 더 중요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후배들한테 '그만 둘거야.', '결혼만 하면 그만 둘거야' 이런 말 하는 직원이 더 오래 다니니 딴생각 말고 지금 자리서 열심히 일 하라고 얘기합니다. 저를 봐도 그렇잖아요."
◆37년째 은행원 외길 속 위기도= '대학'을 매개로 국민은행과 연을 맺었지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8년 입행 후 본점 국제부, 국제영업부, 외환업무부 등에서 20여년 지낸 후 2001년 뒤늦게 여의도 지점으로 나왔다. 여성을 영업점장으로 발탁하겠다는 고(故) 김정태 전 행장의 인사 방침이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업점 생활은 예상과 달랐다. 고객 응대 업무 자체가 낯설다 보니 출근길이 두려울 정도였다. 승진에서도 밀렸다. 김 전 행장의 여성 등용 인사 방침에 따라 동기는 물론 후배까지 영업점장으로 먼저 승진했지만 그에겐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유난히 일 욕심이 많았던 그였지만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때는 철이 없어 잘 몰랐어요. 영업점 경험이 없다 보니 당연히 서툴 수 밖에 없었고 인사에서도 밀릴 수 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지금 이것을 못 이기면 안 된다'는 선배의 충고에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결국 김 본부장은 동기들보다 2년 늦은 2004년 청담북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지금이야 강남권 주요 매장으로 꼽히지만 당시는 소규모 점포라 그리 선호하는 영업점은 아니었다. 한발 늦은 승진에 오랜 시간 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에게 2005년 국민은행이 단행한 대규모 명예퇴직은 전환점이 됐다. 그보다 먼저 영업점장으로 승진했던 동기들이 구조조정 대상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김 본부장은 "능력있는 친구가 권고사직 대상에 오른 것을 보니 '아차' 싶었다"며 "정말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에 동네 곳곳을 다 돌아다닐 정도로 뛰어 다녔더니 '무엇보다도 신뢰를 우선하자'는 철학도 생기더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아침 회의 시간이면 꼭 '은행원이면 정도를 걸어야 한다. 성실과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등, 한번 해보면 쉽다= 영업점장 2년차, 김 본부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영업점장 첫해 2004년 전국 평균 정도에 들었던 청담북지점은 2005년 처음으로 30등 안에 들며 점장 평가대회서 은상을 탔다. 독종으로 불릴 정도로 직접 발품을 팔며 영업을 한 김 본부장의 공이 컸다.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하루 일정을 분단위로 쪼개 가며 고객을 만났고 상담 내용도 일일이 메모했다. 다음해(2006년) 청담북지점은 전국 10등안에 들며 금상을 받았다. 자연스레 탁월한 영업력을 발휘한 김 본부장도 행내 스타가 됐다. 1등 은행원으로 사는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 본부장의 탄탄대로는 거침없었다. 2007년 은행권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 개설 붐에 맞춰 방배PB센터로 옮긴 후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에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그는 2009년 잠실롯데PB센터장으로 옮기자마자 바로 1등을 꿰찼다. 국민은행이 수석지점장 제도를 도입한 2011년 첫 해 그는 수석 타이틀도 받았다. 도곡PB 수석 센터장으로 옮긴 이후에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1등 비결을 묻자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1등의 맛을 보는 게 어렵지 그 다음은 하기 쉽다"며 "한 번 해보면 1등이 되는데 필요한 일의 양과 질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게 돼 이 정도면 가능하겠다, 힘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외의 얘기를 꺼냈다. "한번도 1등을 목표로 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를 보면)주변에선 1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목표는 '몫을 꼭 지키자'입니다. (제가)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이를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하는데 그럼 너무 미안해지지 않겠어요?" 몫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1등이 됐다는 게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승진의 기회도 그렇게 찾아왔다. 2004년 처음으로 청담북지점장으로 승진한 후 8년 만인 2012년 '여의도 영업부장'으로 이동했다. 영업부장의 꽃인 여의도 영업부장은 본부장, 부행장 등 임원으로 승진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로 여겨지는 자리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1년 후 개인영업지역본부장으로 임용됐다. 김 본부장은 "여의도 영업부장으로 발령났을 때 잘하면 본부장도 가능하겠다는 기대를 한게 사실이다"며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는데, '김해경'에게 맡겼더니 걱정할 게 없더란 얘기를 듣고 싶다"며 웃었다.
◆"안된다는 생각 말고 몸부림 쳐 봐라"= "몸부림을 쳐 봐라." 김 본부장은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한다. 그는 "문제는 항상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저하는 사람도 있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을 쳐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선을 뛰어넘는 '몸부림'을 친다면 성공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을 것이란 지론에서다.
"공부를 안하고 서울대에 가길 바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가능한 일이죠.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본인의 일에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스스로 물어보세요."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끈기, 버티기'를 강조했다. 여성 직장인 대부분은 임신과 출산, 육아부담이 밀려오는 시기 '경력단절'을 고민하게 된다. 한 순간에 불어난 집안 일에 일ㆍ가정의 양립에 어려움을 겪어서다. 김 본부장 역시 두 아들의 교육 문제로 적잖은 고민을 했다. 그 때 멘토였던 김순현 전 본부장은 엄마가 옆에 있는 것 보단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해줬다.
그는 "선배가 아이는 엄마가 직업을 가진 것에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만큼 아이를 핑계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소원해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이어 "본부장이 된 후 공식적으론 얘길 못하지만, 친한 여자 후배에겐 개인적으론 최소기간으로 육아휴직을 다녀오라고 조언해준다"며 "육아휴직 기간 만큼은 어쩔 수 없이 인사평가에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으니 일ㆍ가정 양립 방안을 찾아 버텨보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she is …▲ 1978년 한성여고 졸업 ▲1978년 6월 국민은행 입행 ▲2001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2004년 2월 개인영업점장 임용 ▲2004~2006년 청담북 지점장 ▲2007~2011년 방배ㆍ잠실롯데ㆍ도곡PB센터장 ▲2012년 여의도영업부장 ▲2013년1월 개인영업지역본부장 임용 ▲2013~2014년 서울 강동지역본부장 ▲2015년~ 서울 북부지역본부장 ▲201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사진=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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