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12만명 의사의 입'이 된 그녀
임신도 순번제로 하는 의료계
여자라는 핸디캡도 특혜도 떨쳐야
그녀는 여전히 사다리를 오르는 중이다. 올해 서른다섯. '여성리더'라는 명함이 아직은 어색한 젊은 나이지만, 12만명의 대한미국 의사를 대표해 우리나라 의료를 대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임신도 순번제로 돌아갈 만큼 사방이 유리천장인 의료계에서 가임기 여성이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겸 홍보이사(서남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사다리를 찾는 것이 많이 어려웠다"면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여성은 남자보다 2배, 4배 더 열심히 발을 휘저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백조가 물속에서 끊임없이 발을 휘젓듯이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은 남이 안 보이는 곳에서 남성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일례로 의대 교수가 되기 위해선 환자 진료와 연구, 논문 등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하는데 워킹맘인 신 이사는 논문을 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달까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강사로 재직한 그는 병원 진료도 하면서 지난해부터 의사협회 홍보이사를 맡아 일주일에 두번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으로 출근해야 했다. 원격진료 등 산적한 의료계 현안 때문에 주말에도 일정이 많았다.
신 교수는 "진료와 연구는 출근해서 하면 되는 일이니까 가능한데 논문은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한다"면서 "퇴근 후나 주말에 논문을 쓸 시간이 부족해 밤잠을 아껴가며 논문을 써야했다"고 말했다. 신 이사는 지난달 서남대 교수로 발탁됐다.
4살 아들을 둔 그는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이다. 동갑내기 남편은 퇴근 후 아들을 돌보는 일을 전담하지만, 집안일 대부분은 여전히 신 이사의 몫이다. 그는 "모성애가 천성인 여성이 아무래도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임신한 이후 너무 힘들어서 며칠 집안일을 안 하면 냉장고부터 세탁까지 제대로 엉망이다. 냉장고를 정리하라는 오더(주문)까지 제 일이 된다"고 말했다.
신 이사가 1인 3역(役)을 소화하며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천장까지 오를 사다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요즘에는 대학이나 대형 병원에서 여성 의사의 비율도 대폭 늘었다. 하지만 고위직은 여전히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도 중간 관리자까지 승진은 어렵지 않지만 조직의 최고자리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신 이사는 "여성 최고경영자(CEO)도 많아졌지만 미혼인 경우가 많다.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선 결혼이나 출산에서 거리를 둬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남성의 군대경험이 사회에서 인정받듯 임신과 출산, 육아도 하나의 커리어로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이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의사의 꿈을 키웠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생물선생님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연스레 인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기독교 집안인 탓에 '의료봉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의사의 길을 걷는데 한몫했다.
꼬마 숙녀의 목표는 의대였다. 의사가 되기 위해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았다. 수학을 유난히 좋아해 공립학교를 다니면서도 수학영재반에서 특별수업을 받았고, 과학고에 진학했다. 180명 정원 중 여학생 비율은 5분의1에 불과했다. 딸만 셋인 집안에서 셋째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줄곧 남자들과 경쟁을 하면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들과 숱한 경쟁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내공을 쌓는 계기가 됐다. '여자'라는 핸디캡을 이용하지 말 것과 모든 일에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다. 신 이사는 "여성티오(정원)가 있는 조직에선 여성이라 기회가 쉽게 열릴 수 있지만, 이런 자리는 능력을 발휘하기 보단 특혜를 받았다는 인식이 많다"면서 "또 여성은 임신과 출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업무에 배제될 때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안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 의료계를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를 봤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신 교수는 감염병과 전쟁의 최전방에 있었지만 홀몸이 아닌 탓에 감염병 환자 진료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신 교수는 "남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조직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여성이라는 경우도 업무에 제한이 있다"면서 "병원에선 임신 중인 여의사를 배려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력도 필요하다는 것이 신 이사의 설명이다. 여성의 경우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공정경쟁에서 실력을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인맥관리에는 소홀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들의 경우 학연과 지연 등 인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조직생활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면서 조직에서 여성보다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이사는 "천장까지 올라가기 위해선 실력은 기본이고 인맥관리도 중요하다"면서 "여성은 실력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을 하지만 조직의 의사결정도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만큼 관계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여성은 인생의 멘토를 찾아야 한다고 신 이사는 강조했다. 그는 젊은 여의사들이 살인적인 진료 스케줄과 가사를 병행하며 고민하다 포기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했다. 그는 "모두 잘하기는 힘들다"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일과 가사를 잘 극복한 사례를 찾아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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