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그리스가 결국 12일(현지시간)에는 채권단으로부터 구제금융 지원 확약을 받아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가 돈만 받고 약속한 개혁 작업을 진행하지 않을 수 있는 이른바 '먹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쌓인 불신의 벽이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날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주요 인사들은 금일 회의에서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짓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재무장관 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정상회의도 의미를 잃게 된다.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날 예정됐던 EU 정상회의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구제금융 승인을 위한 최종 관문인 EU 정상회의가 취소됨으로써 그리스가 이날 구제금융 지원 확약을 받아낼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다만 투스크 위원장은 마지막 여지는 남겼다. 그는 트위터에서 이날 EU 정상회의에 앞서 예정됐던 유로존 정상회의는 오후 4시에 시작돼 그리스에 대한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날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와 유로존 정상회의 끝장 토론에서 구제금융 지원 확약을 받아내고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EU 정상회의 일정을 다시 잡아 최종 승인을 받아내는 것인 셈이다.
◆예상과 반대로 흐른 회의 분위기= 주말 유럽의 그리스 구제금융 회의는 당초 금융시장이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흘렀다.
지난 9일 그리스 정부가 채권단에 새 개혁안을 제출한 후 금융시장에서는 협상 타결을 낙관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리스 정부가 예상보다 고강도의 긴축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리스가 약속한 개혁안은 채권단이 요구했던 수준과 상당히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래서 11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고 어쩌면 12일 예정된 EU 정상회의는 취소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시장의 예상대로 EU 정상회의는 취소됐다. 하지만 협상 타결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협상 타결 여부가 확실치 않아 취소된 것이다. 투스크 상임의장은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에 유로존 정상회의가 길어질 것이고 따라서 물리적으로 EU 정상회의까지 진행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신뢰'를 지적한 데이셀블룸 의장=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에 개혁 '약속'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혁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의 개혁 약속만으로는 구제금융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먹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재무장관들은 개혁 약속 이행을 위한 좀더 구속력있는 조건을 요구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 정부측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 5개월간 협상을 진행하면서 쌓인 불신의 벽이 그리스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된 셈이다.
전날 재무장관 회의를 앞둔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의 발언에서 이같은 사실은 확인됐다. 그는 협상 타결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리스 정부가 약속했던 것을 이행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리스가 제안한 긴축안을 실제로 이행할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개혁안의 제안 내용에도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더 어려운 것은 신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신뢰가 깨졌다고 말했고 스페인의 루이스 데 긴도스 재무장관도 신뢰가 매우 낮다고 꼬집었다.
◆향후 전망은=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국민투표 카드까지 이미 써버린 치프라스 총리에게는 사실상 더 이상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유로존 탈퇴를 감수할 생각이 아니라면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치프라스에게는 시간적 여유도 없다. 구제금융 지원이 지체될수록 은행 자본통제에 따른 국민들의 고통이 더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12일 구제금융 협상 타결을 예상하고 자본통제를 13일까지로 잡아놨다. 하지만 최종 협상 타결이 지연됨에 따라 자본통제 기간도 더 연장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결국 최대한 빨리 협상을 끝내는 것이 최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채권단이 요구하고 있는 그리스 개혁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요구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수용을 할 경우에는 그리스 내부 반반을 잠재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국민들이 거부했던 개혁안보다 더 강도높은 개혁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국민들을 설득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하든 향후 그리스 정국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된 셈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