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결정·사제 징계 소송 각하…"분쟁 요소 많아 판결 기피" 사법 소극주의 지적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이 신도들이 간부가 되는데 찬성하시죠? 그럼 박수를 쳐주세요." 한 대형 종교단체 신앙인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가 다니는 단체가 규정된 투표를 거치지 않고 참석한 회원들에게 박수를 치는 방법으로 간부를 선출한 것. A씨는 이를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종교활동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의하여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그 자유가 보장 되어 있다"며 각하 판결을 냈다. 소송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이 사법판단이 가능한 종교 분쟁에도 눈감고 있다. 민감한 문제를 '편의주의'에 의해 피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의 판결문 검색시스템을 보면 매년 수십건 가량의 종교단체 사건을 각하(소송 요건 없음)해온 것으로 드러난다. 총회의 결정, 사제에 대한 징계 등을 따지는 소송이 주로 각하됐다.
법원은 종교 사건에 침묵하는 까닭으로 헌법 20조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를 든다. 한 판결문은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종교와 국가기능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기에 종교단체의 조직과 운영은 그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종교단체 내부관계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 판단을 하지 않고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논리가 법원이 종교사건 판결을 피하는 '형식논리'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있다. 남형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무 논문 '종교단체 사건에 대한 사법소극주의 비판'에서 "종교단체 내부의 갈등이 법적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교리와 관련 없는 법적 문제에 오로지 종교단체 내부 일이라는 이유로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며 이를 지적했다.
이런 법원의 종교사건 소극주의는 '편의'에 따른 결정이라는 내부 분석도 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도 "통계를 내긴 어렵겠지만 종교 사건에서 판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법이 개입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분쟁적 요소가 워낙 강하고, 사인간의 권리관계가 복잡해 민원이 많기에 소극적인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종교사건이 민감하고 민원이 많은 탓에 확실한 결정을 주저하는 셈이다.
남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한국과 달리 법의 종교사건 판단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종교단체의 건물사용권, 사제가 종교단체로부터 받는 임금 등에 대한 판결을 한국보다 전향적으로 내놓는다. 개인과 종교법인과의 사이라도 세속적인 법률관계라고 판단되면 결정을 주저하지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종교문제에 과도하게 개입은 하지 않되 '편의주의'와 '형식논리'에 갇혀 판결을 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교회공익실천협의회 대표 김화경 목사는 "법원의 판결을 소극적으로 내려 기초적인 문제만 건드릴 뿐 분쟁에 깊숙히 들어오지 않으려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권한 소송 등 법적판단이 필요한 곳에 사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아 왕왕 억울한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남 교수도 "표결 방법에 관한 절차상 하자를 다투는 등 사건은 종교교리에 관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법심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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