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변호사 시험 성적 공개" 법조인 선발 지각변동 예고…"학점·학벌보다 공정"VS"줄세우기 문화 재현"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법조인 '등용문'이 지각변동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변호사 시험 성적 비공개를 위헌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는 기대와 함께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의 결정으로 변호사 시험 성적이 공개될 전망이다. 지난 25일 헌재는 변호사 시험 성적 비공개를 위헌이라 판단했다. 이에 변호사시험법 제18조 1항에 있던 '시험의 성적은 시험에 응시한 사람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됐다.
공개되는 변호사 시험 성적은 앞으로 법조인 선발 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부, 검찰, 대법원, 로펌 측은 현재 "어느 정도 참고자료로 활용될 지는 언급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는 대체로 이 성적이 이제껏 적용된 학점 등 기준보다 비중이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법조인 선발에서 로스쿨 학점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반영했는데, 이제는 상대적으로 모든 지원자를 평가해볼 수 있는 변호사 시험 성적이 고려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강신업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도 "법원, 검찰과 로펌은 보수적인 조직"이라면서"변호사 시험 성적을 무시하고 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령 성적 20등인 사람이 떨어지고 1000등인 사람 붙었을 경우 합리적 이유를 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시험 성적이 평가요소로 자리잡는 데 대해서는 우선 긍정 여론이 나온다. 학점과 학벌 대신 더 공정한 평가기준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지역 로스쿨 관계자는 "학교마다 기준이 다른 학점이나 학벌 등 보다는 더 공정하게 실력이 반영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로스쿨의 서열화와 '계급 세습'논란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강 공보이사는 "법조인 면접에서는 지원자의 실력을 알 수 없기에 이제까지 학벌이나 배경이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 "법조인은 의사처럼 전문가를 뽑는 시험이다.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성적이 공개되면 실력을 기준으로 뽑을 수 있어 배경이나 학벌 작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재학생 박모(26)씨도 "지역대학에 있더라도 법학성적이 우수하면 극복된다는 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가 법조계 '줄세우기' 문화를 재현한다는 지적도 있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계를 옛날로 돌리는 방법을 택했다. 사법시험식 '줄세우기' 문화가 이어질까 우려 된다"면서 "변호사 시험 성적이 공개되면 학교들은 합격률 경쟁을 할 것이고 수석이 누구인지 보도가 나가는 등 다양해야 할 법률가에 대한 평가 기준이 변호사 시험 성적으로 획일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양한 법조인력 양성'이라는 로스쿨 본래 도입 취지도 훼손된다는 비판이 있다. 남 교수는 "현행 로스쿨에 외국과 학점을 교류해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연습하는 등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데 학생들이 이를 기피할 것 같다. 변호사 시험에 매달리면 로스쿨 도입 취지인 다양한 분야에 대한 법조인 양성이 되질 않는다"면서 "로스쿨 제도는 국제ㆍ스포츠ㆍ엔터테인먼트 분야 등 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한 법률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시행됐다. 법률가가 다시 '사법시험'으로만 공부해서 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로스쿨 재학생 김모(29)씨도 "이제 로스쿨에서 법사회학, 미국법 같은 특성화 과목을 들을 학생은 거의 없을 것 같다"면서 "사법시험 과목만 듣게 해 일률적인 법률가를 만드는 것이 로스쿨 제도의 원래 취지는 아니었는데, 헌재가 로스쿨의 취지를 깊이 있게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신영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학생들이 변호사 시험만 공부하게 되는 데에 관한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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