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줄곧 열세였다. 유럽의 세를 등에 업은 덴마크, 국제해사기구(IMO) 활동이 풍부한 사이프러스 후보 사이에서 유력 후보군에 이름조차 꼽히지 못했다. 하지만 5차선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과반수의 표를 획득했다. '세계 해양 대통령', '바다의 유엔 사무총장'이라 불리는 첫 한국인 IMO 사무총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3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IMO 본부에서 개최된 사무총장 선거에는 한국, 덴마크, 필리핀, 케냐, 러시아, 사이프러스 등 6개국 후보가 출마해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최종 당선됐다.
임 당선자는 "유엔 국제기구의 책임자로서 전 세계 해양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규범 제정에 역할을 하겠다"며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틀 속에서 세계와 호흡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IMO 사무총장에 한국인이 당선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한국이 IMO에 가입한 지 53년 만이며 아시아인으로는 세 번째다. 지금까지 유럽출신 5명, 캐나다, 인도, 일본 출신이 각각 한명씩 선임됐었다.
이날 선거는 40개 이사국이 참여해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투표하며 최저 득표자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후보자 국가 대표로 나와 소개 연설을 했고, 임 당선자는 '함께하는 항해'를 슬로건으로 자신의 비전을 발표했다.
투표가 시작됐을때까지도 임 당선자의 당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1차 선거에서는 덴마크의 해사청장 출신 안드레아스 노르데세스 후보가 12표를 획득, 1위에 올랐다. 하지만 1명씩 탈락하는 회차별 투표에서 부동표를 흡수하겠다는 우리측의 전략은 2차 선거에서부터 빛을 발했다.
2차 선거에서 14표로 1위에 오른 임 당선자는 이후 3차(15표), 4차(19표)에서 표를 늘려갔고, 5차 투표에서 26표를 획득해 덴마크 후보를 12표 차로 꺾었다. 임 당선자는 오는 11월 IMO 총회 승인을 거쳐 내년 1월 정식 취임한다. 임기는 4년이다.
줄곧 열세였던 임 당선자가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최종 당선된 배경으로는 후보자의 전문성,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가 꼽힌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의 남미 순방을 계기로 유럽 후보쪽에 기울었던 남미 국가들이 우리나라 후보로 돌아섰고, 세계 최대 해운국인 파나마는 지난달 말 한국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최근 유 장관이 영국, 싱가포르, 태국을 연이어 방문하는 등 해수부와 외교부가 협력체제를 가동해 지지표를 모아온 효과도 컸다.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마도로스 출신으로 IMO에서도 활약하는 등 30여년간 해운·해사부문에 몸담아온 임 당선자의 전문성은 두말할 바 없다.
IMO는 해운ㆍ조선과 관련된 안전, 해운물류, 해양환경보호, 해적퇴치, 해상보안, 해상교통 등의 국제규범을 만들고 개정하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다. 국제규범을 제정ㆍ개정하는 권한을 가진 만큼 해운 조선 분야에서 유엔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회원국 171개국, 준회원국 3개국이다.
지난해 국내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981~2013년 IMO의 국제규범이 우리나라 연관산업에 미친 경제적 영향은 약 153조원으로 추산될 만큼, 해운ㆍ조선 산업계에 미치는 파급력도 크다. 특히 한국인이 IMO 사무총장으로 당선됨에 따라 향후 국제해운업계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불과 수십년전 원조를 받던 최빈국의 분단국가가 어떻게 해운조선분야에서 최고 비중을 갖는 국가로 성장했는지가 부각되며 많은 이사국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며 "우리나라 경제전반에 새로운 도약의 활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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