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검증 무력화·현직 법무부 장관 신분 유지·입증책임 전가하기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12일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정의화 의장이 여당 단독 표결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힘에 따라 본회의 표결 일정은 불확실하지만 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등으로 총리 공백상태가 장기간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임명동의안 본회의는 사실상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황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제도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이전의 인사청문회와 달랐다. 후보자 사전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직 법무장관이 총리후보자 인사청문 대상이 됨에 따른 잡음도 만만치 않았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의혹에 대한 입증을 누가 할 것인지를 두고서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총리후보 잔혹사라 불렸을 만큼 엄격한 인사검증의 칼날을 황 후보는 어떻게 피할 수 있었을까? 이번 인사청문회를 넘어 앞으로 있을 인사청문회의 법칙마저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전략을 분석했다.
1) 사전 검증 없는 인사청문회
통상적으로 대통령이 총리 등 인사청문대상자를 지명하면 국회와 언론의 검증이 시작된다. 입수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자료를 요구한 뒤 결격사유를 찾는 방식이다. 특히 국회에 후보자에 대한 기초적인 신상정보가 담긴 임명동의안이 제출되면 이를 바탕으로 후보자에 병역, 재산형성과정, 비리 의혹 등이 샅샅이 살핀다.
국회와 언론은 이에 따라 의혹을 제기하고, 후보자는 통상적으로 이에 대해 해명자료를 배포하거나 기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는 식으로 대처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나 안대희 총리 후보자 등 낙마자들은 인사청문회 이전에 사전 검증 과정에서 거론된 의혹 등도 이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완구 전 총리의 경우에는 서울대병원에서 공개검증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인사청문회법상 청문회 기간은 3일이지만 이처럼 의혹제기와 해명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통상적이었고 넓은 의미로 이 기간은 인사 검증의 시간으려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황 후보는 달랐다. 황 후보는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청문회 때 밝히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철처하게 회피했다. 통상 의혹 제기되면 이에 대한 해명이 이뤄지고 해명 가운데 사실과 다른 부분을 중심으로 문제점이 지적되지만 황 후보자는 이를 건너뛴 것이다. 황 후보자는 이처럼 사전검증을 피해감에 따라 의혹 해소는 없었다. 대신 황 후보는 이전 후보들이 청문회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되는 전례를 피해갈 수 있었다.
청문회에서 검증할 구체적 자료 제출도 늦거나 없었다. 오죽하면 박범계 새정치연합 의원은 인사청문회 첫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께서 황교안 후보자님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보내온 지 십수 일이 지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황 후보자는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서 변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충실한 자료제출이 전제되었더라면 어쩌면 공직후보자로서 적합한 방어 전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 청문회를 임하면서 과연 부실한 자료제출이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 청문회를 해야 되는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
우리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시한을 제한하는 부분이 많다. 가령 인사청문회는 최장 3일간만 실시할 수 있으며, 임명동의안 제출 15일 이내 인사청문회가 마쳐야 하고, 마친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3일이내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후보자는 3일간만 버티면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된다. 특히 집권여당이 과반 정당이어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 처리할 수 있다면 인사청문회 3일간을 버텨낸다는 의미는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설령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해도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에게는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우리와 달리 통상 인사청문회가 60~90일간 진행된다. 법적으로 정해진 기한도 없다. 시간끌기 만으로 인사청문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시간을 구속하는 제도상의 특성을 갖고 있다. 황 후보자는 이같은 제도를 최대환 활용해 같이 사전검증을 최대한 피하고 자료 제출을 늦췄다. 그 결과 인사청문회는 쟁점이 후보자 개인의 의혹제기 보다는 자료 제출을 둘러싼 논란으로 전개됐다.
2) 현직 법무장관 후보자
황 후보자는 현직 법무자장관 신분을 유지한 채 인사청문회에 임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은 '검찰·행형·인권옹호·출입국관리 그 밖에 법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되어 있다. 특히 수사권을 보유하고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을 지휘하는 막중한 사명을 진 법무장관이 현직 신분을 유지한 채 인사청문회가 진행됨에 따라 여러 잡음이 제기됐다.
황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현직 부장검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었다. 임명 당시부터 인사청문회 준비팀에 법무부 소속 부장검사 2명이 파견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검찰청법에 따르면 황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검사들이 도운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직무는 ▲범죄 수사와 공소 제기 및 유지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 지휘·감독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 ▲재판 집행 지휘·감독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 수행 등 뿐이다. 이 때문에 정치행위가 금지된 검사가 청문절차를 돕는 것은 검찰청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 준비 등에 참여했다.
이 외에도 황 후보자의 과거 변호사시절 수임사건 가운데 내용이 지워져서 보낸 19건의 사건(19금 목록)에 대해서도 파견검사가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범계 의원은 이와 관련해 "법조윤리협의회의 19건을 새까맣게 지워서 국회에 보냈습니다. 파견검사가 관여했다는 흔적이 높습니다. 이것이 황교안 후보자의 검찰에 대한 힘이고 사실상의 영향력입니다"라고 말했다.
황 후보자는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가지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법무부 직무가 엄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총리에서 낙마할 경우 법무부 장관을 유지하겠냐는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의 질문에 대해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황 후보자가 인사청문을 통과해 총리가 되어서 법무부 장관은 공석이고, 낙마를 해도 법무부 장관이 공석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황 후보자는 인청 기간중 법무부장관으로 법무부와 검사들의 조력을 받으며 청문회에 임할 수 있었다.
3) 의혹의 입증은 누가 할 것인가
황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의 또 다른 점은 의혹에 대한 입증을 누가 하는가에 관한 부분이 쟁점이 됐다. 그동안의 인사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이 후보자에 대해 어떤 의혹을 제기하면, 후보자는 동원 가능한 방법을 다해서 이같은 의혹을 해명하거나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황 후보자의 경우에는 달랐다. 황 후보자는 과거의 후보자와 달리 개인의 신상과 프라이버시 등을 들어 제출을 거부하거나 미뤘다.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청문회나 법정 등 진위공방을 하는 자리에서 중요한 문제다. 인사청문회에서 입증책임이 국회에 있다면 의혹을 제기한 뒤 이를 뒷받침 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의혹을 제기한 주장은 기각된다. 반대로 입증책임이 후보자에게 있다면 의혹에 대해 후보자의 해명이 불충분할 경우 의혹은 혐의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황 후보자는 입증책임을 사실상 의혹을 제기한 야당에게 전가했다.
가령 병역면제 의혹과 관련해 야당은 담마진으로 군대를 면제 받은 황 후보자에게 군면제 기록 외의 별도 자료를 요구했다. 의료기록을 제출할 수 없다면 사진이라도 제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자료 제출은 없었다. 김광진 의원은 "지금 후보자께서는 계속 청문회 기간 내내 입증책임에 대해서 위원에게 주시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병역 문제도 사실은 후보자 본인의 병역, 이것도 입증에 대한 책임은 후보자에게 있다"며 " 야당이 무슨 증거를 찾아내 가지고 이것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저는 후보자께서 충분히 소명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논란이 됐던 19금 목록(자문사건이라는 이유로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사건)의 경우 사면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인사청문회 마지막날 확인됐지만 사면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었다. 급기야 19금 목록에 대해 제한적 열람을 한 뒤, 황 후보자가 사면 관련 자문을 한 사실이 확인된 뒤에는 누구에게 자문을 했는지를 두고 공방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야당은 특정인을 언급하며 그 사람이 맞냐 안 맞냐를 묻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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