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부 김민진 차장
독일 베를린은 얼마 전 주택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했다. 주택 임대료를 지역 평균가의 1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인데 모든 세입자를 대상으로 적용했다는 점이 귀를 번쩍 뜨이게 한다.
모든 세입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건 신규 세입자의 계약에서도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임대료 상한제를 최대 16곳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적용하고 추이를 봐가며 확대하겠다고 했다.
우리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연 5%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상한을 두고 있다. 법이 정한 계약 단위가 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 10% 이상 임대료를 올릴 수 없다.
하지만 이 법이 유명무실하다는 건 전월세 계약을 한두 번 정도 해 본 세입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연 임대료 5% 상한이 재계약에만 적용될 뿐 신규 계약과는 무관하다는 데 구멍이 있다.
그렇다면 기존 계약자라도 이 법조항을 통해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전월셋값 폭등기엔 기존 계약자에게도 있으나마나 한 조항이다. 전월셋값이 크게 오를 땐 주택임대차시장에서 공급자가 주도권을 갖는다. 세입자는 재계약을 하려면 집주인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어차피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마당이니 요구 수용이 어렵다면 살던 집에서 내쫓긴다.
우리도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과 같은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몇 년 째 지지부진하다. 정치권에서 이런 논의를 시작한 지 꽤 됐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11년 2월 당시 민주당 전월세 대책특별위원회는 전월세 인상률을 5% 이내로 하고 임대차 계약기간 갱신을 1회에 한해 최대 4년간 보장하자는 내용의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게 흔히 말하는 전월세 상한제다. 재계약에 대해 전월세 인상률을 제한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은 한몸으로 움직인다.
정부와 야당에서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시종일관 반대했다. 시장원리에 맞지 않아 혼란을 주고 재산권 침해 등 문제가 있다는 게 반대 이유다.
세월이 지나 국회에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올 들어서도 여러 차례 회의와 공청회를 진행했다. 이견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전세난민, 월세시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진 판국이니 세입자들의 수난만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늘어난 게 반전세다. 월세비율이 높아지고 저금리 고착화가 예상되면서 관심이 커진 게 전월세 전환율인데 이 또한 법과 현실의 간극이 크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정한 전월세 전환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즉 연 1할(10%)과 기준금리의 4배 이내 중 낮은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현재 기준금리가 1.75%이니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은 7%다. 기준금리가 추가인하돼 1.5%로 낮아지면 전환율은 6%로 떨어진다.
한국감정원의 4월 기준 전국 평균 전월세 전환율은 7.6%다. 서울은 6.6%로 그나마 법이 정한 테두리에 있지만 지방 대부분은 9%가 넘고 경북은 10.8%나 된다.
정부는 선진국 사례를 자주 들이밀지만 정작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을 펼때는 시장논리만 앞세운다. 베를린의 임대료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82%나 올랐다고 한다. 어림잡아봐도 우리의 전셋값은 이보다 더 올랐다.
공영 임대아파트 비율이 우리의 서너 배씩 되는 유럽 선진국에서 왜, 어떤 과정과 합의를 거쳐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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