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통준위 인정한해 수용 가능성 낮다
[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9일 남북대화를 공식 제의함으로써 내년도 남북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어디까지지나 북한이 우리의 제의를 수용해서 대화에 나선다는 전제조건을 충족할 때다. 아쉽게도 북한이 그간 보여온 행태를 보면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물론, 북한도 대화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으며 핵·미사일 도발로 제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전통 우방국 중국과는 관계가 소원해졌고 러시아와는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러시아 역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고 중국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일본과의 관계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도 남북대화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국가 최고권력기구 간의 대화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고위급 접촉을 위한 통지문을 보내면서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보냈다.
게다가 북한은 무엇보다 통일준위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북한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은 지난 7월 25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최근 출범한 통준위가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위한 것이라며 비난했다. 북한 공식 매체가 통준위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북한의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이날 '체제통일을 추구하는 불순한 모략 소동'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조선 당국의 통일준비위원회 조작 놀음은 민족을 전쟁의 재난 속에 빠뜨릴 체제통일 망상의 발로로서 북남관계 개선과 자주통일을 일일천추로 열망하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을 우롱모독하는 정치협잡행위"라고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민주조선은 통일의 청사진이 7·4 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 10·4 선언에 이미 제시돼 있다며 "남조선의 현 집권세력이 이성이 있다면 이명박 역도의 전철을 밟지 말고 북남 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이날 통준위가 향후 추진할 업무 중의 하나로 "통일시대에 필요한 법률과 제반 제도를 정부와 협의하여 준비해 나가겠다"는 대목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통준위가 대북 제의를 한 것도 문제거리로 지적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전문가는 "대통령 자문기구가 정책집행기관이냐"고 반문하고 "자문기구가 전면에 나서면 통일부와 다른 부처는 뭐하느냐"고 비판했다.
통준위가 일을 많이 했고 통준위나 정부가 같다는 게 우리 정부 판단이지만 이런 '진의'가 북에 전달될 지는 의문이다.
남북장관급 회담도 참석자 격문제로 결렬 됐는데 통준위가 나설 경우 북한도 격을 문제삼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이 통일전선 차원에서 제의하는 제정당사회연석회의를 제안할 경우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것이냐"고 반문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그동안 청와대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만큼 수정제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화를 하자고 나서면서 여건 조성 차원에서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재, 상호비방중단을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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