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불확실성의 경제학(economics of uncertainty)'이 학문적 영역을 구축한 이래 리스크(risk)와 불확실성은 거의 유사한 의미로 혼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개념에는 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 순수이론 경제학의 수립자이자 시카고학파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는 1921년 펴낸 <리스크, 불확실성 및 이윤>이라는 저서에서 '확률적 상황'을 선험적 확률, 통계적 확률, 추정(推定)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는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을 선험적 확률, 통계적 확률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특히 '리스크'라고 명명하여 주관적 추정에 의존하는 '진정한 불확실성(true uncertainty)'과 구별했다. 모호한 추상적 개념을 확률론을 이용하여 계량화한 이 위대한 발견은 오늘날 거의 모든 금융 경제이론과 가치체계의 근간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성을 확률분포 안에서 수학적으로만 작동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객관적 논리체계를 구축하느라 인간의 '기질과 욕망'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이 세계화, 디지털화되면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리스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수단으로 창안한 선물, 옵션과 같은 파생금융상품이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모순적 상황에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고 그 여진(餘震)은 계속되고 있다.
월가(Wall Street)에서 증권분석가로 활약하기도 했던 레바논 태생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교수는 2007년 <블랙 스완(The Black Swan)>이라는 책에서 통계적 확률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존 리스크 이론의 한계와 허상을 통박(痛駁)했다. 그는 확률분포곡선의 양 극단에 존재한다고 해서 '꼬리위험(tail risk)'으로 부르기도 하는 '블랙 스완'의 개념을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치로,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알려지지 않아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고, 사후적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사건'이라고 정의하였다. 예견할 수 없어 인식하지 못하고 마땅한 대책도 없는 '극단적인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그의 경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현되면서 예언적 성가를 높였다.
지난 3분기 미국경제가 11년 만에 최고 성장률 5.0%를 기록하고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낙관적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미국의 경제, 금융 전문사이트인 마켓워치는 경계해야 할 2015년 글로벌 금융 시장의 10대 리스크 요인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오류' '국제 유가 반전' '유럽의 정치적 변수' '사이버 전쟁' '유동성 증발' '신흥국 시장 통화위기' '우크라이나 등의 전쟁 위험' '에볼라 바이러스' '테러 우려'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 등을 내놓았다. 블랙 스완에서 파생된 '그레이 스완(Gray Swan)'으로 이름 붙인 이 요인들은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로 정체를 드러냈던 '블랙 스완'은 분열과 갈등만 야기한 채 다시 망각의 늪으로 잠복해 버렸고 거세(去勢)도 하지 않은 내시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내용의 '지라시'가 삭풍에 난무한다. '땅콩 리턴' 사건으로 쉽게 높이 올라간 자의 철없는 오만이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이 되는지를 몸으로 실증했지만 여당 대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비리 기업인의 가석방을 추진하겠다고 지각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불황의 한파가 덮친 세모(歲暮)의 하늘은 우울한 잿빛이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物極必反)"는 옛말에서 한 가닥 위안을 찾는다. 공하신년(恭賀新年)!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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