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ch Beck)이 현대사회를 '위험사회(Risk Society)'로 규정한 이래 '리스크(Risk)'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상황과 현대인의 불안한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상징하는 표제어가 되었다. 흔히 '위험'으로 번역되는 '리스크'라는 단어는 '용기를 내어 도전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risicare'에서 유래되었다. 도전이라는 함의(含意) 때문에 리스크는 수동적 운명이 아닌 능동적 선택이며, 효용이나 편익을 추구할 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확률론적 차원의 위험'이라는 점에서 부정적 의미의 유사어(類似語)인 Danger, Peril, Hazard 등과 구별된다.
리스크가 보편화되면서 '생활 리스크(Life Risk)'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원래 손해보험에서 보상하는 대인대물(對人對物)사고의 발생 경우와 유형에서 비롯되었지만 사회학에서는 '누구만큼의, 혹은 일정 기준의 생활을 할 수 없게 될 위험성'으로 정의된다. 상대적인 삶의 비교과정에서 도출된 이 개념은 통계적 평균에서 벗어나는 정도인 표준편차나 분산을 그 척도로 삼는 재무이론의 리스크와 논리적으로는 비슷하지만 비교대상에 따라 객관적 기준이 달라져 모호하고 막연하다. 인간의 욕망이 사회화, 집단화, 표준화, 획일화되어가는 점을 비틀어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갈파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언명(言明)처럼 이 정의에는 박제(剝製)된 인간의 욕망이 맹목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삶이 곧 모험인 세상에서 생활 리스크는 의식주는 물론이고 관혼상제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에서 엄밀하게 작동한다. 리스크를 감내(堪耐)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차별적이지만 그 수용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대할 수 있는 삶의 질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체념과 절망을 거쳐 자포자기한다. 출산율 세계 최저, 자살률 세계 최고라는 부인하고 싶은 이 기막힌 기록은 생활 리스크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상의 리스크를 제어할 수 없으니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리스크를 감내하더라도 보다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없으니 출산을 피한다.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맹자는 "예의(禮義)를 비방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하고, 내 몸이 인(仁)에 거하지 못하고 의(義)를 따라 행하지 못함을 자기(自棄)라 한다.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리고 행하지 않으니 슬프다(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고 한탄했지만 인의예지라는 상덕(常德)이 인생의 리스크 관리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된 세상이다.
생활리스크는 개인 차원의 리스크지만 집적되면 '사회적 리스크'로 증폭한다. 저축은 노후대비와 생활안정을 통해 생활리스크를 담보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가계저축률은 2013년 말 현재 4.5%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반면에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단기부동자금은 지난 8월 말 현재 757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가 공을 들인 부동산 시장도 전세가는 폭등하는데 매매가는 침체하는 이상기류를 보이고 있다. 모두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 리스크의 원천인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 현상들이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리스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는 '말씀'도 있고 '가장 위대한 기도는 인내'라는 '가르침'도 있지만 세속의 삶이 눈앞의 희망을 무슨 수로 외면하며, 인내만으로 악한 시간을 어찌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방송작가이자 프로듀서인 다이앤 프롤로브(Diane Frolov)는 '인생은 리스크다(Life is a risk)'라고 했다. 인생의 위험을 강조한 말이 아니라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충고일 것이다.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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