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한국연금학회의 정책 좌담회에서 나온 얘기다.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학계와 언론계, 민간 전문가, 국민연금연구원 관계자 등이 '연금제도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좌담회는 미래를 논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국민연금의 현재를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국민연금은 풍족하진 않아도 그런대로 노후를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안전판이다. 은퇴 후에도 빈곤에 떨지 않고 가능하면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도 본연의 목적이다. 그러려면 연금액이 일정 수준은 돼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연금액이 노후의 버팀목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다.
올 8월 기준 수급자 348만여명의 월평균 수령액은 31만7000원이다. 1인 기준 최저 생계비 60만3400원에 턱 없이 모자란다. 공무원연금의 220만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소득 대비 지급률(소득대체율)이 낮기 때문이다. 2007년 '그대로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하면서 60%에서 50%로 낮췄다. 이마저 2009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줄여 2028년에는 40%(40년 가입 기준)로 떨어진다.
대체로 가입 기간이 짧은 탓에 실질 지급률은 훨씬 더 낮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올해 실질 지급률은 18.1%(평균 가입기간 10.1년)다. 2032년 23.4%(17.3년)로 오르긴 하지만 그 뒤로는 가입기간이 늘어도 21.5% 선에서 멈춘다. 좌담회에서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구인 국민연금연구원 관계자가 "국민연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토로한 배경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재정은 계속 나빠져 지속 가능성마저 불안하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제3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결과 국민연금 보험료율(월 소득의 9%)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적립금은 2043년 256조원으로 최고점에 달한 뒤 2044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적립금을 까먹기 시작한다. 2060년이면 적립금은 고갈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6%를 크게 웃돈다.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제 기능을 하려면 수급액이 최소한 최저 생계비보다는 많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월평균 연금액이 최저 생계비의 110% 선이다. 독일과 일본은 100% 선이다. 지급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OECD 회원국 평균은 2013년 기준 57.9%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 수준은 45%(30년 가입 기준)다.
국민연금이 노후를 다 책임질 수는 없다. 그래도 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은 역시 국민연금이다.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손질해야 한다. 연금액이 최저 생계비 수준은 되도록 지급률을 높여야 한다. 대신 당장은 부담스럽겠지만 OECD 평균 19.5%의 절반도 채 안 되는 보험요율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처럼 정부의 지급 보증, 연금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 가입자 소득 상한선(408만원) 상향, 가입기간 증대 방안 등도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요즘 공무원연금 개혁이 화두다. 공무원연금은 내는 돈의 평균 2.4배를 받고 국민연금은 1.6배를 받는다. 1960년 도입 당시 '박봉의 희생에 대한 보상'에 초점을 맞춘 때문이다. 이제는 공무원 보수가 연금으로 보상해주어야 할 만큼 적지 않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고치는 게 정상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국민연금도 제 역할을 하도록 '지금보다 많이 더 내고 조금 더 받는 방향'으로 손질하는 걸 논의할 때가 됐다.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해 지급률과 보험료 조정을 공론에 붙여보자.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