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는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흔히 '한국 현대출판계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1982년 조그만 출판가 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한 이래 한국 인문사회과학 출판계의 지형을 바꾼 창작과비평사(현 창비사)에서 영업, 기획 등 출판의 중요 분야를 섭렵했다. 이 기간에 400만부가 팔린 <소설동의보감>, 360만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을 기획하는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키며 출판마케팅 분야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98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창비를 나온 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 쓴소리를 도맡으며 출판계의 건강한 방향성 정립에 기여했다는 평을 얻었다. 출판평론가로 활동하며 출판 전문 격주간지 <기획회의>의 발행인과 월간 <학교도서관저널> 발행인을 겸하며 '인생 오솔길' 1기(편집자, 마케터 15년)와 인생 오솔길 2기(출판 평론가 15년)를 거쳐 세 번째 '오솔길'인 독서모델학교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 중인 한 소장을, 5만여권의 장서고이자 개인 집필실인 마포의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사범대를 다녔는데 어떻게 출판계와 인연을 맺었나.
▲대학 때까진 교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1980년 대학 시절 민주화시위를 주동했다가 구속돼 감옥에 다녀오는 바람에 교사자격증을 따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해 얼떨결에 온누리출판사에 입사했지만 재미가 적지 않았다. 처음 기획한 책이 <농민문학론> 신경림 편과 <신동엽-그의 삶과 문학>이었는데 나름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부족함을 많이 느끼던 차에 창작과비평사로부터 제의가 와서 그리로 옮겼다.
-영업사원을 하다가 출판기획가에 이어 출판 관련 연구소장, 베스트셀러 작가로까지 외연을 확장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창비에 15년 동안 다니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창비의 백낙청 선생님은 워낙 바쁘신 분이라 "어떻게 할까요?"란 말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나는 늘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그 이유를 10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설명드려야 했다. 창비에서의 삶은 내가 어떤 자리에서도 버틸 수 있는 자신감을 안겨줬다.
-<소설 동의보감> 등 숱한 베스트셀러의 명 기획자로 알려져 있는데 출판기획의 핵심 착안 사안은.
▲<소설 동의보감>은 한 신문의 서평이 계기가 되어 400만부나 팔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부터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마케팅 기획을 한 다음 베스트셀러를 만들게 됐다. 출판기획의 핵심은 독자의 결핍을 읽는 것이다. 목이 마른 사람은 물을 마시게 돼 있다. 그러나 그 결핍은 늘 바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21년을 장수하며 360만부나 팔린 것은 저자가 그 결핍을 더 잘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출판계의 문제점을 간단히 진단하자면.
▲한 출판인은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출판은 "새로운 기획이 아니라 선인세 경쟁과 저자 캐스팅에 열을 올리고 점유율 싸움만 했다"고 지적했다. 이 말에 우리 출판의 모든 모순이 집약돼 있다. 팔리는 책을 펴내다 보니 책의 다양성은 크게 훼손됐다.
-최근 인생3기라는 취지의 새로운 책 읽기 운동을 시작했던데, 그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은.
▲과학기술의 발달은 '고용 없는 성장'을 낳고 있다. 이제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수많은 스펙을 쌓아도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설사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해도 대학 졸업하고 길어야 20년을 일하고 그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앞으로 그 기간은 더 짧아질 것이다. 앞으로 정보화 시대를 이겨내는 사람은 '독서'와 '손의 참여'를 중시해야 마땅하다. 책을 읽으며 논제를 뽑아내고 토론을 통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공독(共讀)이라는 개념의 독서법을 주창하던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만든 엔지니어 제이슨 머코스키가 쓴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를 읽다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비율이 33%, 대학을 졸업하고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비율이 44%라는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이보다 더 심할 것이다. 그러니 혼자서 책을 읽는 방법을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함께 읽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 드러나는 사람마다의 차이, 그게 바로 상상력이다.
-최근 잇달아 출간되는 자기계발서를 버리라고 했던데, 그 이유는.
▲자기계발서는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잠재력만 키우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속삭인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를 비판한 <거대한 사기극>을 펴낸 이원석은 "사실 자기계발서 열풍은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국가와 학교와 기업이 담당해야 할 몫을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민영화, 사교육, 비정규직 등), 사회 발전의 동력을 확보한 셈"이라고 서문에 꼬집었다.
-스마트 시대에도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던데.
▲근대 이후에는 '소수'가 쓰고 '다수'가 읽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읽고 쓰는 세상이다. 사실 근대 이전에도 읽기와 쓰기는 연동되었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가의 자제를 보라! 최근에 읽기와 쓰기의 연동이 부활된 것은 소셜 미디어 때문이다.
-최근 저서에서 100권의 독서를 주장했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
▲10~15년 후에는 한 사람이 평균 29~40개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이제 '직업'은 사라지고 '일'만 남는 시대가 곧 온다. 그런 시대에 한 분야에 적응하려면 입문서부터 전문서까지 100권만 읽으면 해결된다.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최근 <마흔 이후 인생길>이란 책을 냈던데 나이 마흔이 갖는 의미는.
▲마흔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젊은 나이"이며, "남 눈치 보지 않고 인생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시기"이다. 100세 시대이긴 하지만 나이 80세까지만 건강하게 일하며 산다고 하더라도 후반기 인생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매월 몇 권이나 책을 보는지.
▲<베스트셀러 30년>을 한 포털에 연재할 때는 1주일에 20권의 책을 읽기도 했다. 지금은 적어도 하루에 한 권은 반드시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소장의 읽어보니, 좋던데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ㆍ열린책들=젊은 시절에 프랑코, 트루먼, 마오쩌둥, 스탈린, 김일성과 김정일 등을 만나 격동의 현대사를 바꿨다고 주장하는 알란 칼손의 이야기. 작년 말에 나는 2014년의 트렌드를 '추억의 반추'로 잡았는데 이 트렌드에 가장 부합하는 영화가 <명량>이라면 책은 이 소설이다.
◆<투명인간> 성석제ㆍ창비=이 소설의 주인공 김만수는 압축성장의 시대를 살면서 평생 게을렀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수의 가족은 항상 흩어지거나 사라지고 죽는다. 가족 해체 시대에 개인의 삶과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소설.
◆<2030 기회의 대이동> 최윤식,김건주ㆍ김영사=과학기술 혁명이 불러온 기계화ㆍ자동화는 '고용 없는 성장'을 초래한다. 로봇 한 대가 도입될 때마다 34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하지만 10년 안에 지금 존재하는 직업의 80%는 사라질 것이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다시 탄생한다. 미래 생태계를 주도하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사물인터넷> 커넥팅 랩ㆍ미래의창=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시계, 안경, 가전제품, 공장 설비 등 모든 사물이 '지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기 전에 '지혜를 가진 사물'의 시대, 즉 'Things Sapiens' 시대가 먼저 온단다. 달라진 도구가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아이를 읽는다는 것> 한미화ㆍ어크로스=세상의 모든 부모가 '태어나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건 아이를 낳고 키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는 언제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다. 그런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최고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뛰어난 저자의 경험이 잘 녹아들어 있다.
윤승용 논설고문 yoon6733@
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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