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의 '사람읽기' 인터뷰-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기술만으로 성공할 수 없어…인문학적 소양 뒷받침돼야 全人된다
새벽엔 인문학 도서 즐겨…手不釋券 모토, 잠자리서도 책 안 놓아
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는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재벌가(금호아시아나)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나 천성이 책을 좋아했다. 대학도 일부러 사업과 관련이 없는 사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집안의 사업가적 DNA는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경제학으로 학위를 받고 돌아와 대학에서 10여년 교수로 일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강학과 연구에만 몰두하기엔 피가 너무 뜨거웠다. 김대중 정부 시절 민간인 두뇌 영입 케이스로 공무원(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으로 변신했다. 민간과 시장의 원리인 '경쟁과 효율성'을 공무원조직과 공기업에 혁신적으로 적용해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마법사'로 불렸다.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인력의 19% 이상을 감축하고 과도한 복지도 과감하게 손댔다.
차관급인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시절에는 11조원에 달하는 각종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재평가해 효율성을 높였다. 매년 고위공직자로 영입한 민간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모델로 꼽히는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엄청난 독서가의 끼를 조직 내에 전파하며 '기술인'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만 전인(全人)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폴리텍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지난 40여년간 산업현장 곳곳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을 배출하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과 혈맥을 같이해온 공공직업교육대학이다. 전국적으로 34개의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국가산업발전에 필요한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양성훈련과정과 재직자의 직무능력과 고용가치를 높여주는 향상훈련과정을 운영한다. 현장 중심의 교육을 통해 해마다 80%가 넘는 높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다.
-이사장 부임 후 인문교양도서 읽기 운동 등을 대대적으로 펼쳤다던데.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전국 34개 캠퍼스 도서관을 집중 정비했다. 취임 후 전국 캠퍼스를 돌아보면서 인문서적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관심이 고조됐던 스티브 잡스 전기를 처음으로 비치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이후에는 신간 베스트셀러는 물론, 동서고금의 양서들도 지속적으로 확보해왔다. 인문교과에 대한 비중을 11%에서 18%까지 끌어올리는 등 커리큘럼도 바꿨다. 교양개설학점도 20학점에서 31학점으로 확대했다.
-이른바 '기술인'들에게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대사회는 기술자에게 기술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기술을 바라보는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다. 인문학적 사고가 뒷받침되는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따지고 보면 기술도 사람 편하게 하자는 데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기술과 인문학이라는 이종학문 간 교차학습을 통해 창의적인 기술개발능력을 키워주는 데도 목적이 있지만, 기술의 근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익히고 개발하는 데 있어, 그 기술이 왜 필요한지 사람들에게 어떤 편익을 주는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게 한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기술은 인문학과 함께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 스티브 잡스의 기념비적인 명언을 학생들 마음에 담아주고 싶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변화가 있었나.
▲처음에는 기술장이가 기술만 좋으면 됐지 인문학이 왜 필요하느냐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빡빡한 강의와 취업준비에 올인하다 보면 인문학 도서까지 읽기에는 짬이 안 난다는 반발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딱딱한 도서관을 분위기 있는 카페 형태로 바꾸었다. 학생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확대해나가자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일기 시작했다. 1년에 인문서적 한 권 읽던 학생들이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만 1.48권을 읽었다. 전 캠퍼스에서 여러 독서 동아리가 생기고 있는 것도 큰 의미다.
-도서관이 멋지다던데.
▲신문이나 책보다는 휴대폰이 손에 더 익은 요즘 세대들을 위해 전자도서관 시스템을 갖췄다. 언제 어디서나 대학 추천도서들을 읽을 수 있도록 모바일 서비스가 지원된다. 전공도서의 경우에는 e-러닝(learning) 시스템을 통해 종이 없는 수업이 가능하다.
-학자에서 행정가로 변신해 성공한 모델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던데, 변신 이유와 소회는 어떤가.
▲지락(至樂) 불여독서(不如讀書)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배우고 익히는 것 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세상에 녹여내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1998년 개방형 공모 직위였던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 자리를 시작으로 공직에 몸을 담게 됐다. 강단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해야 했지만 정책의 파급 효과만큼이나 보람도 컸다.
-소문난 독서광이던데 나름의 독서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독서 종류를 달리 한다. 새벽시간이 특히 중요하다. 기관장을 하다 보니 퇴근 이후의 시간이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닌 때가 많다. 반면에 새벽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다. 하루를 열어 주는 것은 주요 일간지와 주말에 구입한 신간이다. 출근길 차 안에서는 못 다 읽은 책이나 타임지를 살핀다. 결재 이후엔 시간나는 대로 전공분야인 경제 서적이 언제나 옆자리 친구다. 퇴근 이후에는 주로 인문학 도서를 즐긴다. '신사는 침대에 혼자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침대 머리맡 자리는 언제나 즐겨 보는 책이 즐비하다. 주말에는 습관처럼 서점을 찾는다. 생각해뒀던 책을 구입하러 갔다가 의도치 않게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는 '횡재'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불석권(手不釋卷)을 모토로 삼던데 무슨 뜻인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말로 <삼국지>의 '여몽전(呂蒙傳)'에 나오는 고사다. 장군이었지만 문약한 여몽이 독서할 겨를이 없다고 하자 그의 군주인 손권이 '변방 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후한의 황제 광무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후 여몽은 전장에서도 학문에 정진하고 옛 친구인 노숙이 몰라보게 박식해진 여몽을 보고 놀란다. 이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괄목상대)"고 답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하는 현대인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신문에 '중국 스토리 인물사'를 연재 중인데 중국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고대 중국은 드넓은 영토를 두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인물들의 각축장이었다. 저마다의 정치와 사상을 펴기 위한 유세가들의 활동도 매우 활발했다. 사기열전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외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워줄 인물들이 많다.
◆박 이사장의 읽어보니, 좋던데요
◆<중국의 역사> 진순신(陳舜臣)/한길사
중국 상고시대부터 신해혁명 시기까지의 중국 역사를 체계적이고 알기 쉽게 정리한 역사 개설서. 존 페어뱅크의 <신중국사>, <케임브리지 중국사>와 비교해 훨씬 더 평이하지만 역사적 인물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 인물사적 성격이 강함. 진순신은 대만계 일본인으로 시바 료타로와 함께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한 역사 소설가 겸 역사학자인데 뛰어난 필력과 역사관은 중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는 평을 받았다.
◆<정관정요> 오긍(吳兢)
당 태종 사후 측천무후 때의 사관인 오긍이 피로 점철된 측천무후 시대의 혼란에서 벗어나 당 태종 시대의 태평성대를 그리는 마음에서 저술한 당 태종과 신하 간의 국정 문답집. 수나라 멸망의 원인, 수성과 창업의 비교, 지도자의 요건, 충신과 양신의 차이 등 주옥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북송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더불어 제왕학의 교과서로 평가된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약력
▲1958년 광주 생
▲충암고, 성균관대 사학과, 시라큐스대 대학원 경제학과(석사, 박사)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교무부총장, 총장직무대행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 단장,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
▲학교법인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현)
윤승용 논설고문 yoon6733@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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