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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7. ‘화양연화’ 잊지못할, 꽃보다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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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7. ‘화양연화’ 잊지못할, 꽃보다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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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이 영화는 두번을 봤다. 아마도 처음에 볼 때는 워낙 술이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어두운 거리와 낡은 계단, 그리고 장만옥이 입은 화려한 치파오(旗袍)가 꿈 속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만나고는, 다시 만날 줄 몰랐다. 그런데 비디오 가게에서 '화양연화'를 집어들었던 건 미시감(未視感) 때문이었다. 왕가위 감독의 이 유명한 영화를 내가 왜 보지 않고 지나쳤던가 하는 마음으로 들고온 테이프였다. 그러나 몇 장면이 나오고 장만옥의 인상적인 젖가슴을 보면서 구면임을 기억해냈다. 그녀의 젖가슴이 대단하더라는 촌평을 내놓겠다는 게 아니라, 꽉 조여드는 옷에 빳빳하게 긴장해있는 듯한 가슴이 한 여인의 고독과 자존심을 여미기라도 하듯 빈틈없는 팽팽함으로 스크린에 꽉 찼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슬쩍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장만옥의 사진 몇 장을 훔쳐보니, 그녀의 가슴은 오히려 겸손하고 태없다. 아마도 폴시(가짜 가슴)를 집어넣은 게 아닌가 하는 싱거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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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華)는 "꽃같은 시절의 아름다움"이란 의미이다. '화양적(花樣的)'이란 형용사는 삶의 화개(花開)를 은유하지만 장만옥의 치파오와 침실을 장식한 벽지(壁紙) 등에서 보여지는 화사하고 대담한 꽃무늬들을 떠올린다. 이 색채감은 왕가위의 화면 구성의 전략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쉽게 흘러가는 시절에 대한 슬픔과 향수를 물컹거리게 한다. 너무 화려해서 가짜인 듯한 꽃시절의 고고한 아름다움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리는 뜻밖에 불륜으로 얽힌 얼굴없는 두 남녀의 각각의 배우자 신분이다. 무뚝뚝한 의문이지만, 왜 감독은 차우의 아내와 첸의 남편의 얼굴을 끝내 화면에 비추지 않았을까. 주모운(차우, 양조위)과 소려진(첸, 장만옥)의 사랑을 토르소로 보여주려는 의지는 아니었을까. 차우의 아내와 첸의 남편은 감독이 보여주려는 사랑의 외곽이며 환경적 지엽일 뿐이다. 그들을 생략함으로써 관객의 정신이 오직 저 두 사람의 관계와 심리 교차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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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무심코 꺼내든 것은 회사에서 한 후배가 휴가를 받아 캄보디아로 간다는 말을 하면서 화양연화를 거론했기 때문인 점도 있었다. 과연 이 영화에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이 나온다. 시종일관 아주 비좁은 공간에서 진행되던 영화가 끝부분에 가서 갑자기 무대가 트이면서 앙코르와트로 넘어가는 것이 뜻밖으로 느껴졌다. 왜 카메라는 거기까지 달려갔을까. 왕가위는 그저 자기가 여행을 좋아하고 그런 신을 집어넣음으로써 그가 좋아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바로 영화감독하는 재미 아니겠느냐고 너스레를 떤다. 앙코르와트의 담벼락 구멍에 차우는 자신이 가진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 전 싱가포르에서 직장 동료와 얘기를 나누며 그는 비밀을 파묻는 옛 풍습에 대해 얘기를 한다. 동료는 물론 그럴 시간 있으면 잠이나 자겠다고 시큰둥해하지만...어쨌든 앙코르와트는 '과거'라는 시제를 지니고 있는, 그러나 침묵하는 공간이라는 점이, 차우의 고백에 알맞은 영화무대라고 생각하기 않았을까. 그나저나 후배는 무슨 고백할 일이 있어, 담벼락 구멍을 찾는 것일까. 다만 화양연화의 애틋하고 쓸쓸한 풍경에 매료되어, 저 먼 곳까지 날아가겠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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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차우의 직업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어딘가에 찾아보니 일간지의 편집장이라고 한다. 취재를 나가는 일이 없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직업으로 볼 수도 있겠다. 1962년,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이듬해에 그는 나와 같은 일을 하며, 아내 아닌 딴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후후. 이렇게 요약하고 보니, 그의 삶이 구체적으로 돋을새김된다. 차우 부부와 첸 부부 모두 맞벌이를 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차우의 아내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출장이 잦은 직업이다. 첸의 남편은 일본회사의 대표이사이다. 첸 자신은 수출업체 사장의 비서이다. 이런 직업들로 보자면, 그들은 비교적 부유한 상류계층이다. 당시 외제 밥솥이나 넥타이를 구입할 수 있는 재정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차우와 첸이 이웃하여 사는 집이 있는 골목은 어둡고 음울하며 낡은 느낌이 난다. 아마도 그 시절의 도시는 어디라도 그런 궁상이 끼어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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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각각의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귀는 사실을 알게되는 건, 차우의 넥타이와 첸의 가방이 두 사람의 배우자의 것과 같은 것임을 발견한 뒤이다. 희귀한 외국제품이라 우연이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차우와 첸의 남편은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첸과 차우의 아내는 같은 가방을 들고 다녔다. 두 남자, 그리고 두 여자는 엇갈린 공간 속에서 같은 배역을 맡게되는 기이한 운명의 복선이다. 저쪽이 그런 관계를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사를 온 후는 아닌 듯 하다.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해보인다. 그렇다면 이사오기 전일 텐데, 첸의 이웃집을 고른 건 차우였으니, 여기엔 매우 희귀한 우연 하나가 성립되어야 한다. 불륜관계에 있는 두 남녀의 상대방이 우연히 같은 곳으로 이삿집을 고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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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와 첸의 사랑은 너무나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내밀하게 추억 속으로 진입해버려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꽃피는 시절'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느려터진 사랑일 뿐 아니라, 참을성 또한 대단해서 한 방에서 한 사람은 침대에 누워, 한 사람은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우면서도 별 일이 없다. 이쯤에서 생겨나는 의문은, 두 사람의 상대가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섣불리 그것을 확인하는 행동을 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 관대할까. 여기엔 스스로의 내부에서 이미 부지불식간에 타오르고 있는, 어떤 마음 때문은 아닐까. 저 불륜이야 말로, 동네 사람의 이목을 대단히 의식하던 시절에, 또다른 불륜의 감정을 당위화하고 미화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핑계가 아니었을까. 아내가 바람피는 남편으로서, 남편이 외도하는 아내로서, 두 사람은 격정과 혼란과 고독을 진정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삼류 애정물의 뻔한 공식이기도 한, 저 핑계는 그러나 차우와 첸의 느려터진 사랑 때문에 일정한 면죄부를 받아낸다. 욕망하고 진전하는 사랑이 아니라, 부인하고 인내하고 마침내 포기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얼씨구나 좋다, 그래 맞바람 피워보자가 아니라, 이 기이한 운명에 함께 엮인 것을 두려워하고 혹여 이런 운명이 상대를 힘겹게 할까 멀리 떠나버리기까지 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왕가위를 폼나게 한다. 장만옥과 양조위가 입었던 원피스형 드레스와 검은 양복은 어쩌면 세상이 강제한 윤리와 자기 검열에서 일탈하지 못하며 깊이깊이 사랑을 앓는 두 사람을 가두는 단단한 질곡의 외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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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가 편집기자를 하면서 무협 연재소설을 쓰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무협소설광인 첸은 차우와 소설에 관해 조언을 해주는 글쓰기의 동료가 된다. 소설쓰기가 그들의 사랑을 잇는 징검돌이 되는 사정은, 무슨 핑계든 만들어야 이웃의 안사람과 바깥사람이 서로 내왕할 수 있는 구실이 된다는 점도 있지만, 글이 줄 수 있는 내면적인 깊은 공감을 고려하기도 했을 것이다. 무협이란 사랑과 배신과 복수의 활극이니, 그들의 꽉 막힌 사랑의 출구가 되는 좋은 소재였으리라. 작가와 독자는 일대일의 긴밀한 피드백을 이루며 소설공간과 현실공간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열린 상상과 닫힌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가는 저 소설가의 글쓰기가 나를 매혹시킨다. 붉고 화려한 복도가 있는 건물에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작업실을 구하는 대목은 요즘의 나의 희원과 닮아있어 나를 웃게 한다. 차우는 첸에게 거기로 매일 와서 소설 작업을 도와달라고 말한다. 첸은 일단 거절한다. 동네 사람들의 눈이 심상찮다는 이유로...이 건물의 방 앞에 2046이라는 호실 번호가 선명하게 보인다. 왕가위가 함께 찍고 있던 미래를 다룬 영화 '2046'을 홍보하기 위해 이런 양념을 넣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나는 저 소설방을 미래로 열린 공간으로 읽혀지게 하고 싶은 감독의 바램이 담겼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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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말미에 차우는 홍콩의 옛집을 찾아온다. 첸은 그전에 살던 이웃집을 통째로 빌려 세들어 와서 살고 있다. 간절한 삶의 중심인 옛 사랑은 두 사람을 다시 이 거리로 빨아들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카메라는 문득 첸이 한 소년을 데리고 있는 것을 비춘다. 관객은 생각한다. 어? 이게 누구 아이지? 영화에는 차우와 첸의 정사 장면이 없다. 그러나 처음 공개된 영화에는 그런 장면들이 있었다고 한다. 왕가위는 작품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완성본에선 베드신을 빼버렸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영화 속에선 안보이지만 영화의 바깥 어디에선가 정사를 치른 셈이 된다. 그렇다면 저 아이는? 이 부분에 대해 왕가위는 확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물론 첸의 남편이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왕가위는 아이 이름에다 해답을 숨겨놨다. 아이 이름은 용생(庸生)이다. 용생은 홍콩의 인기 무협작가 김용과 양우생을 함께 부르는 호칭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용생은 2046에서 무협소설을 만들어내던 시절의 또다른 '작품'일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너무 작위적인가. 그러면 첸이 차우를 그리워하며, 아이의 이름에나마 한 무협소설가와의 추억을 새겨놨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좋지 않은가. 아참, 그리고 영화를 봤다고 하면 누군가가 꼭 묻는 게 있다.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 "글쎄요. 광고처럼 아름다운 영상 편집과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음악 사이로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공허한 침묵이 배어드는 그걸 재미라고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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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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