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기꺼이 워렌 비티와 아넷 베닝이 출연한 '러브 어페어(Love Affair)'를 말하리라. 세 편을 꼽으라면 이 영화를 포함하여, '토토의 천국'과 '몬트리올 예수'를 든다. 이 영화들이 왜 내게 다른 영화들을 제치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라든가 그런 건 잘 모른다. 최근 나를 사로잡았던 러브 어페어를 빼고 나머지 두 영화는 내용조차 가물가물하다.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기억보다 그것에 대한 감동의 기억이 더 오래 간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영화 '러브 어페어'에는 나의 '유사(似) 러브 어페어'가 아우라처럼 감돈다. 집에 있는 DVD로 이 영화를 틀어놓기만 해도 내겐 한 사람의 기억이 강렬하게 재생된다. '유사'라는 말이 흔히 쓰이는 용례가 그렇듯, 그건 '러브'라고 부르기엔 한참 쑥스러운 '우정'이었다. 그가 처음 내게 갑작스럽게 제안한 것은 이 영화를 같이 보자는 것이었고, 결국 그 일은 실현되지 못했다. 어느 날 그가 보낸 메시지에는 'Love watchin' u move'라는 간략하지만 아리송한 문장 하나가 있었다. 난 그게 무슨 뜻인지 오랫 동안 알지 못했다. 꽤 오랜 뒤에 그가 내게 설명을 해준 뒤에야 알았다. 그의 말. " 당신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바라보는 것이 좋아요."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무슨 일을 해도 다 괜찮고 어떻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해도 다 좋게 보이는 현상. 그걸 외국 사람들은 저렇게 표현하는 모양이다.
"러브 어페어, 꼭 보세요." 한 동안 떨어져 있던 계절이 시작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Love watchin' u move'는 거기서 워렌 비티가 하는 말이예요,라고 덧붙이면서. 그 영화를 보게된 건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종로에 나갔다가 덤핑으로 파는 DVD 꾸러미에서 나는 우연히 저 영화를 발견했다. 그렇게 싸게 산 DVD를 보기 위에 20만원 짜리 '플레이어'를 '덤'으로 샀으니 워렌 비티의 저 말을 듣기 위한 비용이 꽤 든 셈이다. 나는 같은 영화를 두번세번 보면서 즐긴다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아는 내용을 다시 보면서 느낄 지루함이 당연히 고역일 것 같은데, 그걸 기꺼이 즐긴다는 자랑은, '블랙커피'를 마시며 폼잡는 일처럼 부질없는 과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러브 어페어'를 정말 며칠 사이에 세 번 보았다.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음악도 좋고, 대사도 아름답고, 장면들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볼 수록 새록새록 다른 맛이 났다.
영화는 '어느 바람둥이 9단의 마지막 연애'에 관한 리포트였다. 영화가 바람둥이를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손쉬운 한 가지는 그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비난함으로써 도덕적 위안을 삼는 방법이다. 다른 한 가지는 바람둥이의 마음이 되어, 인간의 본능적 취약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이다. '러브 어페어'는 후자의 계열에 줄선다. 바람을 피는 일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묻는 분별력의 질문에, 도덕을 데려오지 않는다. 오직 '사랑' 만을 데려온다. 바람이 그냥 한때의 욕망이나 집중일 뿐이냐, 혹은 사랑이냐. 이 문제를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이, 영화의 줄기다. 사랑이라면, 모든 바람끼는 GOOD이다. 적어도 이 영화 속에선 그렇단 얘기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 중 최소한 한 명은 '바람둥이 8단' 이상이라고 짐작한다. 테리(아넷 베닝)를 처음 만난 마이크(워렌 비티)가 비행기 안에서 그야말로 움직이며 벌인 전방위의 '작업'들은, 8단 쯤은 돼야 감이 잡히는 고수의 그것들임에 틀림없다. 여자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떻게 관심을 끄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어떻게 유혹을 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면, 이 영화를 교재로 쓰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연애 수작에 대해서 우린 꽤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술자리 한켠에서는 그걸 '능력'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자제력을 잃었거나 성실함이 결여된 '나쁜 사랑'의 사례로 치부하기도 한다. 사실, 바람끼에 대한 험구(險口)가 윤리교과서의 머릿말이라 할 만한 사회인지라, 이 천성적인 바람둥이의 러브스토리를 예찬하는 일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걸 '오리의 본성'으로 읽어낸다. 특별 출연한 늙은 캐서린 햅번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바람둥이의 철학'은 그래서, 몹시 새롭고 유쾌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넷 베닝과, 나와 우정을 나눈 그가 닮았다는 걸 발견한 건, 영화를 세번째 보던 때였다. 베닝의 웃음 묻은 따뜻한 응시, 티없이 환한 표정 속에 묻은 장난끼. 무엇보다 깨끗한 얼굴과 꾸밈없는 말과 행동. 상대를 위한 파격적인 배려들. 그렇다면 나는 워렌 비티를 닮았어야 하는데, 그게 별로 그렇지 못한 게, 우리 문제의 핵심이었다. 나는 그처럼 서글서글하지도 않고, 용기있지도 않고, 돈이 많지도 않고, 잘 생긴 것도 아니며, 미국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여행 속에서 나는 기꺼이 워렌 비티의 배역 속에 들어갔고, 그는 베닝이 되어 수없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현실의 웃음과 영화 속의 웃음의 기억이 뒤섞일 정도였다. 메시지에 적혔던 말의 원문이, I like watching U move란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그가 like를 love로 바꿔쓴 건, 그때의 고조된 관계의 흥분을 반영한 것이었을까.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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