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은석 기자] 올해 초만 해도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정의화 새누리당 의원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당내 최다선인 서청원 의원(7선)이 당 대표 출마를 결심할 경우 후보 1순위는 당시 대표였던 황우여 의원이 꼽혔다. 당 대표를 지냈고 핵심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원사격을 받는 황 의원에 비해 비주류인 정 의원의 외형적 세가 상대적으로 작아보였던 게 현실이었다.
지난달 초만 해도 당 관계자 대다수가 후반기 국회의장에 대한 질문에 "서 의원이 안 나서면 황 대표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 23일 뚜껑을 열어보니 정 의원의 압승이었다.
출마한 황 의원보다 투표에 참여했던 146명 의원들의 표정 변화가 더 컸다. 투표 결과 발표 직후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이런 흐름과 방향은 예상했었지만 이 정도 표차는 예상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결과가 충격적이다"고 말했다.
투표 9일전까지만 해도 당 대표였던 황 의원이 비주류인 정 의원에게 완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여파가 주류 친박 진영을 위축시켰다는 일반적 분석과 달리 이번 결과에는 여러 뒷배경이 있다.
맨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황 의원의 인천시장 출마 거부다. 인천(연수)에서 내리 5선을 한 황 의원은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을 뿐 아니라 호감도도 높다. 때문에 6ㆍ4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공천 과정에서 당 안팎으로부터 끊임없이 출마요구를 받아왔다. 그가 주재하는 공개 회의에서 출마를 요구한 인사도 있었다. 황 의원은 이런 요구를 끝내 뿌리쳤다. 그가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정치권 모두가 출마 거부 이유를 국회의장 도전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본선 경쟁력이 가장 큰 황 의원의 불출마로 당은 결국 경기도 김포에 지역구를 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을 차출했다.
선거관리 주무 장관인데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 인사를 보내면서 '박심(朴心ㆍ박근혜 대통령 의중)' 논란만 증폭됐고 야당에겐 좋은 공격소재를 제공하게 됐다. 당시 친박계 핵심 의원조차 "황 대표가 너무 욕심을 부려"라고 할 정도로 친박계 의원들의 불만이 컸다.
국회선진화법도 이번 결과에 큰 몫을 했다. 한 재선 의원은 "초ㆍ재선 의원들의 가장 큰 불만이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말할 정도로 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의 골칫거리다. 이 법을 주도한 게 황 의원이다. 황 의원이 대표 임기 막바지에 법안 수정을 약속하며 한 발 물러섰지만 의원들은 전반기 국회의 저조한 입법 성적표를 황 의원 탓으로 돌린다. 한 재선 의원은 "정 의원이 선진화법에 반대표를 던진 반면 황 의원은 주역이란 점이 선거 결과를 좌우했다"고 분석했다.
정 의원의 꾸준한 스킨십도 역전극의 배경으로 꼽힌다. 황 의원이 당 대표 시절 당직을 맡은 측근 의원들을 활용해 득표전을 벌인 반면 정 의원은 직접 개별 의원들을 접촉한 점이 대량 득표를 이끌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올 초부터 소속 의원 전원을 두세 차례 이상 직접 만나 지원을 부탁했다.
특히 선거 막바지에는 지방선거 지원 차 지역에 내려가 있는 의원들을 찾아 전 지역을 순회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정 의원이 오랜 기간 준비하며 의원들을 여러 번 만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정 의원이 성품도 온화하고 원칙주의자로, 부의장을 하면서 좋은 평을 받았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황 의원이 당내 의원들에게조차 인기를 잃은 반면 정 의원은 야당 의원들이 기자들을 만나 '정의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평이 엇갈렸다"고 전했다.
최은석 기자 cha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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