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린'의 정조 역할 "다른 캐릭터들도 탐이 났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영화 '역린'의 주인공 현빈을 만난 것은 영화가 개봉하고도 보름 가까이가 지나서였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맞춰 홍보일정을 모두 미뤄야했던 '역린'은 이제서야 공식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시사회 이후 언론의 평가, 관객들의 반응, 작품에 대한 이해 혹은 오해 등 그동안 마음에만 담고 있어야만 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현빈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군대 후 첫 작품이자 첫 사극인 '역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은 인터뷰 곳곳에서 보였다. 현재까지 340만명이 넘는 관객들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는 "욕심이 더 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으며, "이번 '역린'은 확실히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감정이 생긴다"고 털어놓았다. 언론의 혹평에 대해서도 "속상한 마음은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혹평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지난 공백 동안 연기에 대한 들끓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참 힘들었다는 그는 "내가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온 것"에 대해 "부담감보다는 설렘이 컸다"며 웃는다.
첫 사극 도전이었다. 목소리 톤을 잡는 것부터 어려웠을 것 같다.
"감독님은 기존의 무겁고 걸걸하고 중후한 사극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편하게 대사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상황과 내 톤이 이질감이 생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정조의 상황을 보면, 즉위한 지 1년 밖에 안되는 젊은 왕이면서도, 왕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을 고민하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정조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고, 찍으면서도 상황에 맞게 대사를 바꾸었다."
정조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뤘던 인물인데, 이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또 영화에서는 감정을 억누르는 연기도 많았다
"다른 선배들이 어떻게 정조를 표현했는지 보지 않았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다행인 것 같다. 외형적인 것도 준비했지만, 일단 '정조'에 관한 책을 많이 봤다. 역사 기록들을 참고하면서 인물을 만들어갔다. 이 분은 실제로도 절제를 많이 하고 인내심이 강했던 분이다. 감정은 절제하면서도 또 아무것도 안보여주면 관객들은 그것을 못 보고 가니까 그 수위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시나리오에서는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나?
"사실 다른 캐릭터들도 탐이 났다. 정재영 선배가 맡은 '상책', 조정석 씨의 '살수' 역할도 좋아서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내가 맡을 캐릭터만 보여야 하는 건데 자꾸 다른 데로 눈이 가니까. 그만큼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는 시나리오였다. 역사를 소재로 하면서도 허구의 인물과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소재 자체도 재밌었다. 영화가 실질적으로는 정조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유역변에 있었던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어떤 시점,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영화다. 정조의 영화라고 알고 보면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긴 하지만, 왕이라서 그런지 큰 액션은 없었다.
"조정석(살수 역) 씨 하시는 거 보니까 왕 역할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존현각 결투 장면은 한 달을 찍었다. 조정석 씨가 존현각에 발을 들이고 왕을 만나러 오기까지 3주가 걸렸다. 3주 동안 비를 맞으면서 겨우 조금 싸우고 돌아가곤 하는 모습을 보니 '왕' 역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웃음)"
'등 근육' 장면이 화제가 됐다
"더 잘 나왔을 수도 있는데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한편으로는 저 몇 초가 나를 몇 개월동안 고생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게 꼭 필요한 장면이기도 했지만 우려했던 장면이기도 했다. 그냥 개인 현빈의 몸으로 눈요기용으로만 보일까봐. 결과가 어떻든 그 장면으로 많은 혜택을 본 건 사실인 거 같다. 거기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
정조가 자신의 상대편까지도 끝내 포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연기할 때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뒀나?
"초반에 정순왕후한테 손을 잡고 끌려가는 장면이 하나 있었고, 후반에는 반대로 정순왕후가 나한테 끌려오는 장면이 있었다. 앞 장면을 찍을 때 한지민 씨가 하는 동작을 눈여겨봤다. 손을 어떤 속도로, 어떻게 했는지 그대로 나중에 재현하려 했다. 똑같이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보시는 분들도 시원한 느낌이 들면 좋겠다 싶었다. 정조가 화해의 손을 내밀었던 것은 진짜 용서의 의미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살 방법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찍으면서 정조는 정말 '닮고 싶은 인물'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살진 못하겠지만, 닮아가려는 노력은 하고 싶은 인물이다."
'역린' 시사회 이후 언론에서의 평이 좋지 않았다.
"배우들이 영화를 보지 못한 채 기사를 먼저 접했다. 일단은 아쉬운 부분은 있다. 관객들이 알고 보셨으면 좋았을 부분들에 대해 사정상 말하지 못했고. 감독님이나 배우들은 큰 열정을 가지고 참여한 작품이다. 처음 감독님 봤을 때는 이 작품에 미쳐있다고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더 좋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안좋은 얘기에 속상한 거는 당연한 거지만, 또 혹평은 필요하다고 본다."
군대 있을 때 연기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을 것 같은데, 어떤 심정이었나? 또 2년 공백 후 다시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훈련소에 있을 때는 잘 자고 잘 먹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다 자대 배치를 받고 백령도에 가 있는데 연기 생각이 확 커졌다. 입대 전까지도 한참 달리다가 들어간 것이었으니까. 입대 직전에 영화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등 몇 작품을 연달아서 찍었는데 신인때보다 더 열심히 했다. 군대생활 적응을 하고 좀 시간이 지나니까, 연기 생각에 진짜 힘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휴가 나오면 후배들 많은 연습실에 가서 대리만족만 하다 나왔다. 그런 생각은 한다. 아마 드라마 '시크릿 가든' 끝나고 바로 연기를 계속했다면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분명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을 못하더라도 다른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게 길게 봤을 때는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위안을 삼는다. 제대 후에는 부담감보단 설렘이 컸다. 내 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20대 초반에 데뷔해서 어느 덧 30대 초반이 됐다.
"그 때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 덧 그 나이가 됐더라.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고, 다만 여유는 좀 생겼다. 마흔이 됐을 때,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또 그 때쯤 가정도 꾸리게 되면, 배우로서도 더 큰 변화를 겪을 것 같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냈을 때, 선배들이 그런 얘길 해줬다. '그거 아무것도 아냐'라고. 그 이후의 경험들을 통해서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안다. 지금의 후배들 혹은 아이돌 친구들도 그 상황이 계속 유지될 거라는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다. 대신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기기는 했으면 좋겠다. 난 그러지 못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