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 등 극우정당 일제히 지지 선언·경기회복 돼도 극우세력 영향력 커질 듯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국가는 집과 같다. 누가 자기 집에 들어올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집주인이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스위스의 이민 규제안 통과를 환영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프랑스도 이민 제한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반(反)이민·반유럽연합(EU)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스위스 바이러스'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EU는 스위스와 진행 중인 연구·교육 협력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EU는 올해부터 오는 2020년까지 800억유로(약 116조8920억원) 규모의 연구사업과 147억유로 규모의 교육사업에 동참하기로 돼 있던 스위스를 제재하고 나선 것이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하지만 EU와 체결한 양자 협정으로 사실상 회원국과 비슷한 혜택을 누려왔다. 스위스의 이민 제한법은 스위스가 EU와 체결한 자유노동시장 협약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다.
슈피겔은 스위스가 EU 협약까지 훼손해가면서 이민 제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럽에서 EU의 위상이 그만큼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극우 정당들은 스위스의 이번 결정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게다가 이 여세를 몰아 EU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EU 정서가 팽배한 영국에서는 이민 쿼터제 도입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젤 파라지 대표는 스위스의 이번 투표 결과를 '환상적'이라고 평한 뒤 "드디어 유럽에서 상식이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UKIP는 EU 탈퇴를 핵심 정강으로 내걸고 있다.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UKIP에 대한 지지율은 27%로 노동당과 보수당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노동당·보수당이 100년 동안 양분해온 영국에서 UKIP에 대한 지지율 급상승은 고조되고 있는 EU 탈퇴 목소리 덕이다.
독일·프랑스·네덜란드·오스트리아·이탈리아에서도 이민 규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민주당(FPO)의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대표는 "대규모 이민이 유럽 노동시장에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면서 "오스트리아 국민들 역시 이민 제한법을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에서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이민을 규제해야 한다고 답한 국민이 48%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 동안 유럽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게 유럽에서 외국인 혐오와 EU 탈퇴 등 국수주의가 번지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셸 바르니에 EU 역내시장·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경기가 회복되면 이민에 대한 반대 의견은 사그라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슈피겔은 현 분위기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유럽의 극우 정당들은 오는 5월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의석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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