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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마포 옹기골 흙집이 '토정'이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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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27)

[千日野話]마포 옹기골 흙집이 '토정'이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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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간대도인(君看大道人)하게나
자네, 큰길 가는 사람을 보게나
조시등운산(朝市等雲山)이라네
서울장터나 구름 낀 산속이나 모두 걸어간다네
의안즉도지(義安卽蹈之)지만
옳은 것이 편안하니 그렇게 걷긴 하지만
가왕역가환(可往亦可還)이라네
앞으로 갈 수도 있고 또한 돌아갈 수도 있다네
단공역린치(但恐易?緇)하여
다만 쉽게 물드는 것이 두려워
영돈정수언(寧敦靜修言)하네
고요히 가다듬어 말을 지키네

"도연명의 시 '음주'에 화답한 시편 중의 하나입니다. 옛사람의 뜻에 기대어 어리석은 마음의 일단을 읊은 것이니, 혹여 들을 만한 구석이 있었으면 좋겠소이다."
퇴계의 말에, 성암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천하의 도학자이십니다. 저의 형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도 그런 점입니다. 출(出ㆍ세상에 나아감)과 처(處ㆍ물러나 은거함)의 기준은 나를 써주고 안 써줌이 아니라, 장부가 한 시대를 만나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의 결심이 아닐까 합니다. 비루하게 잔악하게 벼슬을 줄 타는 것보다, 거북못 위로 칡덩굴을 타는 것이 훨씬 더 귀한 성취일 수 있다는 게 구담살이의 변명 같은 것입니다."


"아, 인사가 좀 늦었는데, 저와 동행한 이는 한양서 내려온 공서선생으로 벼슬에 뜻을 처음부터 접고 수학(修學)에만 뜻을 둔 사람입니다."
"아, 그러하군요. 사또가 동행을 청한 분이라면 가히 높은 기개를 지닌 분임을 짐작하겠습니다."
공서가 말을 건넸다. "오는 길에 말씀을 들었습니다. 청우를 타는 구봉의 은자를 뵙고 가는 광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암이 다시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 기실 그 소는 푸른 것이 아니라, 검은 소일 뿐입니다. 물빛과 햇빛이 어려 푸르게 보일 뿐입니다. 검은 소는 있지만 푸른 소는 없으니, 사람들은 제 눈에 보인 것으로 말을 만들어 저를 신선으로 여긴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선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간과하거나 미처 보지 못한 경지에 눈을 두고 있는 정신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유학자 집안에서 성인의 길을 걷기로 맹세한 사람이나, 이백이나 도연명이 꿈꾼 선계(仙界)를 굳이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차원(次元)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한 뒤 옆자리에 앉은 이를 소개한다.
"오늘 고명하신 대학자를 뵈러온 이 젊은이는 제 아우 지함(之?)입니다. 한양 마포나루 옹기골에 흙으로 언덕을 쌓아 그 아래 굴을 파고 위에는 정자를 지어 토정(土亭)이라 이름하였습니다."
퇴계가 말했다.
"아, 그 이름을 이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명선생(조식ㆍ1501~1572)이 마포로 찾아와 만난 뒤 '조선의 도연명'을 보았다고 술회한 일을 전해들었소이다. 화담선생(서경덕ㆍ1489~1546) 문하에서 공부를 하셨다면서요? 주역을 깊이 탐구하여 우주의 운행과 시간의 질서를 살펴 상수학(象數學)에서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토정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깨달음이라 하긴 부끄럽습니다. 벼슬 없이 가난하게 살다 보니 할 일이 책 읽는 것밖에 없는지라 역학과 의학, 천문과 수학과 지리를 기웃거린 것입니다."


토정은 거친 갈포로 된 옷을 입고 패랭이(蔽陽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의 악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음울한 눈빛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1547년 정미사화로 이어진 양재역 벽서사건은 그의 삶에 치명상을 남겼다. 그는 정종임금의 후손인 이정랑의 딸과 결혼을 한 뒤 충주 처가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장인 이정랑이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곤장을 맞은 뒤 산 채로 살을 조금씩 도려내는 능지처사(陵遲處死)형을 받고 죽었다. 충주 일대 선비들이 주모를 했다 하여 충청도가 청홍도로 바뀌는 바로 그 사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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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토정 이지함을 만나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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