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千日野話]두향의 손을 잡은 공서(25)

시계아이콘01분 38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25)


[千日野話]두향의 손을 잡은 공서(25)
AD

퇴계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서에게는 참으로 배울 바가 많습니다. 그 말씀은 음악을 이루는 율(律)과 여(呂)는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기르는 예의와 범절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율려의 자손이라고 하는 뜻은, 천성적으로 음악적인 재능을 많이 지녔다는 뜻도 되니 의미 있는 통찰이라 하겠습니다. 음악과 사람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생각할수록 오묘한 진리입니다."

공서도 깊이 공명하는 듯 목청이 높아졌다.


"사또가 일전에 말씀하신 물아원무간(物我元無間)의 경지가 바로 그것인 듯합니다. 사물과 나 사이에는 원래 아무런 구별이 없었다는 말씀 말입니다."

"허허. 그걸 기억하셨군요. 봄날 뜨락의 풀을 보고 읊었던 시였던 것 같습니다."


두향이 말했다. "저 또한 요행히도 그 시를 들은 적이 있어 외웠습니다. 한번 읊어도 되올는지요?" 두 사람이 손뼉을 쳤다.


인정허금대창궤(人正虛襟對窓?)하니
한 사람이 있어 가슴을 활짝 열고 창문을 마주하니


초함생의만정제(草含生意滿庭除)로다
뜨락섬돌에 풀들이 가득 생기를 머금었구나


욕지물아원무간(欲知物我元無間)이어든
만물과 나 사이에 원래 구별이 없었던 것을 알고 싶거든


청간진정묘합초(請看眞精妙合初)하오
오묘하게 서로 합치는 첫사랑의 진짜 마음을 보게나


공서가 외쳤다. "절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봄날 풀 한 포기 돋는 것만 보아도 만물의 태초의 이치를 알 수 있다는 말씀. 정말 놀라운 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처음에 돋아낼 때의 생의를 보면 진지하고 순수하고 아름답지요. 사람이 태어나는 모습도 그러하고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도 그러하고…."


퇴계의 목소리가 문득 나직해졌다. "실은 저 시를 읊던 때는, 마음이 고단하고 심령이 지쳐있을 때였습니다. 뜨락 계단에 돋아나는 풀들을 한참 들여다보며 크게 위안을 얻었기에 그 파릇파릇한 정기가 가상해 보이더이다."


두향도 말했다. "여러 번 느꼈던 생각이옵니다만, 사또 나으리의 시나 말씀을 들으면 늘 한 가지로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물이나 사람을 진심을 다해 대하려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매화를 대하는 마음이나, 어린 풀을 대하는 마음이나 모두 그 존재의 입장에 감정이입하여 깨달음을 이끌어내시는 도(道)에 늘 옷깃을 여미게 되옵니다."


공서가 문득 곁에 앉은 두향의 손을 덥썩 잡더니 말한다. "아니, 어쩌면 여인이 이토록 벗의 마음을 잘 읽는단 말이오?"


"부끄럽사옵니다."


두향의 얼굴이 붉어지자, 퇴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기에 말입니다. 제가 이곳에 내려와 단양(丹陽, 붉은 해)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노을을 마주 대하는 느낌이외다."


공서가 껄껄 웃었고 두향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자, 자. 시흥이 이토록 도도하니, 술을 한잔씩 권하고 싶소이다." 공서가 술을 권했다. 잔을 들며 문득 퇴계가 말했다.


"아 참, 그런데 공서. 여기 며칠을 더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나와 함께 만나야 할 분이 계신데…." 밤이 깊었으나 세 사람은 일어설 마음을 잊었다. 한참 더 머무르며 유쾌하게 시간을 보낸 뒤에야 술자리를 파했다.


며칠 뒤 퇴계와 공서는 두향과 함께 구봉(龜峰)으로 향했다. 단양 서쪽으로 이십 리를 나아가면 장회(長淮)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서 있는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가 구봉이었다. 구담 아래엔 청풍으로 흘러드는 남한강물이 연못을 이뤄 장관을 이루는데 그곳을 구담(龜潭)이라 부른다. 겹친 산봉우리 아래를 후려치는 듯 삼엄한 절벽이 좌우로 늘어서서 물 아래로 내리꽂혀 있다. 우러러보면 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 기괴하고 장엄한 형상이다. 이곳이 거북못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기암괴석 위에 있는 바위 형상이 거북을 닮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공서가 퇴계에게 물었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퇴계와 소동파의 거문고詩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