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고공행진 연료값 부담에 '딜레마' 빠져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충격으로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소비하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신흥국의 연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달러화를 기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북해산 브렌트 원유 가격은 2008년 고점 보다 상당히 낮아진 상태지만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공 등 미 양정완화 축소에 따른 '5대 취약국'(Fragile Five)으로 불리는 신흥국들은 통화가치 하락으로 연료 값을 더 많이 부담해야 할 처지다.
남아공과 터키는 자국통화인 란드화와 리라화로 환산한 브렌트유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은 자국 통화로 환산한 브렌트유 가격이 이미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있으며 엄청난 수입액 증가 압력을 받고 있다.
많은 신흥국들은 그동안 산업화 과정 속에서 연료 소비가 급증했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 둔화가 국제 에너지값 하락을 이끌었을 때에도 신흥국의 넘치는 에너지 수요가 브레이크 역할을 해왔다.
FT는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생긴 연료 값 부담이 이들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폭 확대를 야기하고 경제성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는 대다수 신흥국들이 인플레 통제에 신경 쓰느라 보조금 제도를 활용해서라도 서민들의 연료 값 부담을 경감시키는데 주력했다. 이 때문에 꾸준한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수입량은 조금도 줄지 않아 정부의 예산 부담만 커진 상태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는 2014년 예산의 11%를 연료 보조금에 써야 할 정도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재 인도네시아 루피화 가치는 당시 정부의 예상 보다 20% 가량 더 하락한 상태로 예산에서 연료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신흥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기존 정책대로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연료 값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을 경감시키려 해도 소비 증가에 따른 연료 값의 추가 상승과 예산 부담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다고 에너지 수입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자니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소비가 둔화하는 부작용을 견뎌야 하는 게 문제다.
남아공 스탠다드뱅크의 월터 웨트 상품 리서치 부문 대표는 "신흥국 국민들은 전체 지출에서 교통비와 음식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높은 연료 값 부담은 국민들이 다른 분야에 지출할 수 있는 여력을 줄게 만들어 경제에 타격을 준다"고 우려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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