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분명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처음에 제가 이곳에 왔을 때 수도가 얼어붙어 그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기 운학 이장님도 그때 그 자리에 같이 있었어요. 죽은 개를 끌고 가는 그림자는 바로 저 사람, 수도 고치러 왔던 그 사람이 분명합니다.”
“거짓말! 너 이 새끼, 거짓 주둥아릴 함부로 놀려? 이봐, 조부장! 뭣해? 저 새끼 좀 잡아줘! 내 오늘, 모두 요절을 내버릴거야, 썅!”
사내는 눈에 핏발을 세워 금세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하림은 그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저 사람이랑 원수진 일도 없고, 원한을 살 일도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대로 판단은 여러분들이 할 몫입니다. 다만 저는 그동안 왜 저 사람이 그런 끔찍한 짓을 했을까 궁금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차차차 파라다이스> 상무.... 바로 그게 해답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차차차 파라다이스>를 이곳에 유치하기 위한 작전이었던 셈이죠. ”
그리고는 모두를 돌아보며,
“하지만 처음에 말씀 드린 대로 저는 이곳에 파라다이스가 들어오건 뭐가 들어오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물론 그럴 권리도 없구요. 하지만 말 못하는 짐승에게 총질을 하여 죽인 일만큼은 결코 용서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악하고 끔찍한 일이니까요. 또 그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하고 말을 마쳤다. 그제야 하림은 속이 좀 후련해진 느낌이 들었다.
“야, 장하림! 너, 이 자식, 두고 보자!”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최기룡이 여전히 악을 써대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느티나무 천막 부근으로 경찰 순찰차 두 대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뒤이어 일일구 구급차도 들어왔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먼저 총 맞은 최기룡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내고나서 이층집 영감과 이장, 그리고 하림을 상대로 몇 마디 물어 본 다음 두 대의 순찰차에 나누어 태웠다. 남경희도 자기 아버지를 따라 가야겠다고 나섰지만 자리가 부족하니까 뒤에 자기 차로 따라 오라고 말했다. 그날 경로잔치를 주최헌 송사장한테도 물어볼게 있다며 경찰서로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들을 태운 차들은 곧 요란한 싸이렌 소리를 내며 동네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소연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경찰차에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이라 여겼는지 하림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며 따라오다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랑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 처음이세요?”
지난 겨울 이곳으로 들어오는 비포장 길에서였다.
“그런 셈이죠.”
하림이 말했었다.
“이 아저씨가 날 놀리시나? 그러면 그렇지, 그런 셈이라뇨?”
그때 그 모습을 떠올리면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려졌다.
어쨌든 오늘 자기에게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이층집 매력적인 여자, 남경희 때문....? 아니다. 그럼, 이장 운학을 위하여.....? 물론 그것도 더욱 아니었다. 그러면.....? 그냥 그랬을 뿐이었다. 굳지 말하라면 자기 자신을 실험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굴절된 세상살이에 대한 자기식의 복수, 그게 더 맞을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소연에게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