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배우 조정석이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을 딛고 날아올랐다. 무서운 속도로 흥행 질주 중인 '관상'에서 그는 대선배 송강호와 환상적인 ‘코믹 콤비’를 보여줬다. 이 작품은 왕의 자리가 위태로운 조선, 얼굴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천재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극중 주인공 내경(송강호 분)의 동반자 팽헌으로 분한 조정석은 특유의 재치 있는 말솜씨와 재미난 춤사위로 관객들을 배꼽 잡게 하는 것은 물론, 진지한 눈빛 연기와 한 맺힌 오열 연기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조정석은 어떤 캐릭터를 맡더라도 다양한 감정선을 타고 놀며 관객들을 주무르는 배우 중 한명이다.
지난 2004년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으로 무대를 밟으며 연기에 입문한 조정석. 뮤지컬 스타로는 유명세를 탔지만 그가 대중들에게 ‘조정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널리 알린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를 통해서였다. 이후 드라마 ‘더 킹 투하츠’, ‘최고다 이순신’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한 그는 2013년 하반기 ‘관상’을 통해 배우 인생의 정점을 찍고 있다.
이런 날을 예상했을까. 대답은 당연히 ‘NO’다. 최근 아시아경제와 만난 그는 “학창시절 봤던 ‘넘버3’의 송강호 선배와 어릴 때 본 ‘모래시계’의 이정재 선배와 같이 연기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라며 웃어보였다.
“김혜수 누나는 예전에 엄마랑 같이 백화점에 갔는데 사인회를 했어요. ‘우와, 우와’ 하면서 봤는데, 같이 연기하고 호흡 하는 게 무한영광이죠.(웃음)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들이라 초고수들과 연기하는 맛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더 즐겁고 행복하고 재밌게 했습니다.”
환한 미소를 짓던 조정석은 문득 재작년 겨울이 생각난다고 했다. 당시 ‘건축학개론’ 5~6회차 촬영 시기였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 빈둥댔단다.
“친한 친구와 소주 한잔하면서 ‘참 신기하다’, ‘영화가 잘될까’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때 시간이 널널했거든요. ‘이제 뭐해야하나’ 이런 생각들이 가득 차 있었던 시간들이었죠. 다시 무대로 돌아와서 그냥 공연하라는 사람도 있었고...요즘 들어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잠시 회상에 잠긴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조정석의 모습을 예상했냐’고 묻는다며 “그걸 어떻게 예상하겠냐”면서 크게 웃었다. 지금 조정석을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는 생각들 덕분이었다.
“제가 만약 주저하면서 공연만 했다면 다른 매체, 영화나 드라마는 턱도 없이 못했을 거예요. 제 이름 조정석 석자를 알리겠다는 일념 하에 다른 공연들은 제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결과죠. 포기하지 않고 주저앉지 않은 생각들이 열심히 다른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지 않나 싶습니다.”
‘관상’이나 ‘건축학 개론’ 속 유쾌한 모습 때문일까. 중저음의 목소리로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조정석은 자신의 코믹 연기가 상대방의 리액션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사실 팽헌이 코믹을 많이 하지만 강호 선배의 리액션이 없으면 재밌게 연출이 안 됐을 거예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앙상블이 있어서 더 재밌었던 거죠. 강호 선배가 너무 잘하니 저는 거기에서 같이 놀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납뜩이 때도 그렇게 제 연기가 재밌었던 거는 제훈이의 리액션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장면들이 잘 살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납뜩이는 혼자 하는 키스 장면이나 원맨쇼 같은 부분이 있었지만, 팽헌은 내경과의 앙상블이 이룬 상황적인 코미디가 특히 많았어요.”
조정석은 스스로 웃기려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 몰두해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독 그에게는 그런 상황이 많이 주어졌는데, 장면을 살리고 못 살리는 것은 얼마나 몰두하고 진지하게 파고드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제가 웃긴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죠. 제가 쑥스러워하는 게 보이기 때문에 안 웃길 수 있고요. 사실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유쾌한 편이에요. 그렇다고 늘 유쾌한 건 아니고 둘이 있다가 말이 없으면 그 공기를 즐기죠. ‘인생 뭐있어? 즐겁게 살자’는 주의에요. 하하.”
조정석은 사람들이 ‘웃긴 놈’인 줄 알지만 사실은 ‘더 킹 투하츠’의 은시경과 ‘건축학개론’ 납뜩이 딱 그 중간쯤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가벼우면서도 웃기지만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겸손한 그에게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자만심과 자신감은 분명히 다르다. 그는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확신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감은 항상 200% 있어요.(웃음) 이 연기를 잘하겠다는 느낌, 내 연기에 대한 확신이 있죠. 거만한 게 아니라 배우들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강호 선배를 맨 처음 만났을 땐 긴장을 많이 했어요. 저는 연기하거나 공연 할 때 무대에서 잘 안 떠는 타입이거든요. 떨면 연기를 못해요. 그래도 선배가 판을 잘 만들어주셔서 마음 편히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도전을 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밝힌 조정석. “배우는 변화무쌍해야 한다. 나는 도전이나 모험을 두려워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스릴 있고 재밌다”고 말하던 그가 앞으로 보여줄 변신에 벌써부터 기대가 모인다.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사진=송재원 기자 sun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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